주변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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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에 일본에 갔다가 나라의 뒷산인 춘일산의 전망대에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모제도기를 파는 것을 보고 이것은 아마 우리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의 미륵반가사유상의 모제품이려니 하고 반가움을 금치 못하고 하나를 샀다. 알고 보니 이것은 한국의 불상이 아니라 일본의 교토 광릉사에 모셔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라고 한다.
한국의 것은 금동으로 되어있고 일본의 것은 목재로 되어있는 차이가 있을 뿐 두 불상은 완전히 똑같다.
일본인이 가장 아낄 뿐 아니라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마저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의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있고 인간이 가지는 영원한 마음의 평화와 이념을 최고로 상징하고 있다』고 격찬한 일본 광릉사의 미륵보살이 우리조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일본 최초의 국가수도였던 나라의 음이 우리말의 국가(나라)라는 말과 같은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어 요즘 한참 화제가 되어있는 「아스까」촌을 찾았다. 아스까 촌은 나라에 수도가 정해지기 전에 「아스까」 문화가 번성한 곳인데 이번에 이곳에서 발굴된 고송총의 벽화가 우리 고구려벽화와 비슷하다고 해서 옛날 이 지대의 문화담당자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의 유랑민들이 비조처럼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와서 안숙하게 되어 이 「안숙」의 음이 「아스까」가 되고 「비조」를 「아스까」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스까」촌에는 일본 최초의 불상을 모셨다는 비조사라는 고찰이 있는데 그곳에 모셔놓은 불상은 백제왕이 보낸 것이라고 되어있고 이 지방에는 귀화촌이라는 지명까지 있는 것을 보니 일본문화의 초창기에 한국인이 많은 공헌을 한 것이 틀림없다.
동양문화의 발상지가 중국이었으므로 중국문화가 한국을 통로로 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일본의 학자 가운데에는 기마 민족 정복설을 주장하여 고대에 있어서는 한국민족이 일본의 정치적 지배자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오늘에 있어서는 서양문화가 일본을 통로로 하여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옛날에 중국이 문화의 중심부이었을 때는 한국이 그 문화전파의 통로였고 일본은 주변 부에 불과했는데 서양이 문화의 중심지가 된 오늘에 있어서는 일본이 그 통로가 되고 한국은 한낱 주변 부로 전락되어 버리고 말았다. 화려했던 우리 선인들의 업적과 오늘의 현실을 비교해 볼 때 후손 된 자로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제 우리도 좀더 창조성을 발휘하여 새로 주변문화를 벗어나서 새로운 문화의 중심부 노릇을 할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이환령<홍익대총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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