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콘서트서도 단체기도 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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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여긴 미국이다. 나는 지금 이민 1백주년을 맞아 미국 4개 도시를 순회공연 중이다. 인천공항을 떠나 열네시간 만에 도착한 곳이 워싱턴DC였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주최 측에서 마련한 조영남 콘서트 기자회견장으로 실려갔다. 이곳의 공연은 특히 서울대 동문들이 주선했으므로 회견장에는 처음 보는 대학동문 선.후배들이 배석했었다.

낮시간이라 점심부터 먹고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서서히 서브되자 실무자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 준비위원장님이 기도 인도를 하시고 식사를 시작하기로 하죠."

나는 시차 때문에 비몽사몽인데도 정신이 번쩍 들어 기도 제창자에게 물었다.

"조영남 콘서트가 기독교 단체에서 주선하는 겁니까?"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쪽으로 쏠렸다.

"아니요."

"글쎄 아닌 것 같은데 왜 공동기도를 올리고 식사를 해야 하는 거죠?"

그때야 기도 제창자가 계면쩍은 듯 대답했다.

"여기선 다 그래요."

그 결과 단체기도를 취소하고 각자 기도로 대체해서 식사와 기자회견은 무사히 끝났다.

그 다음에 내가 옮겨간 곳은 이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마이크 앞에는 나를 비롯, 행사준비위원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방송시간이 임박하자 이번엔 사회를 맡은 예쁜 여자 아나운서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방송 인터뷰 시작 전에 먼저 기도를 함께 올릴까요?"

나는 또 정신이 번쩍 들어 이렇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이 방송이 기독교방송입니까?"사람들이 또 내 눈치를 살피는 장면에 이르렀다.그래서 내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저는 서울에 있는 기독교방송이나 불교방송에 출연하면서도 단 한번 방송 전에 공동으로 기도를 올리거나 염불을 읊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제서야 여자 아나운서가 계면쩍게 설명을 했다.

"여기서는 보통 그렇게 해요."

기도 문제로 가벼운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은 이번에도 기도 없이 곧장 인터뷰 순서로 들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초반 부분에 사회자가 나에게 물었다.

"조영남씨 워싱턴DC에 오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나는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다. 이곳은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개인의 권리가 우선되는 나라다. 몇년 만에 이곳에 와보니 우리 교민들은 미국의 이민정신을 그대로 계승해서 이민 1백년 만에 모두가 청교도로 변한 것 같습니다.

단지 교회 내의 형식을 교회 밖으로 확장시키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이 지구상엔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불교나 유교 혹은 알라신이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안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는 걸 배려해 주셨으면 하는 게 저의 첫 소감입니다.

지구 최고의 권력도시 워싱턴DC 한복판에서 나는 졸지에 가수가 아니라 종교개혁자(?) 폼을 잡아본 것이었다.

비행기로 얻어맞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나 워싱턴의 펜타곤까지 이상스럽게도 종교를 광적으로 믿는 국가들이 늘 싸움판을 벌이는 것 같아 한번 콩 나와라, 팥 나와라 해본 거다.

조영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