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 차관의 확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당면 경제 시책으로 제시한 『경기·물가 및 국제 수지 단기대책』의 세부 계획을 손질하고 있는 당국은 수입 증가율을 전년비 10%로 늘리는 방법으로서 물자 차관을 확대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물자 차관을 확대키로 한 이유는 외환 사정의 어려움을 고려 한데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즉 수입 증대를 위해서는 주요 품목에 대한 외환 할당제를 폐지하거나 수입 규제 조치를 대폭 완화시켜야 할 터인데 그러한 외환 상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품을 물자 차관으로 전환 도입시키려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당국은 일본에서 3억「달러」 차관을 교섭하고 있다 하며 차관 물자 판매 대금은 산은을 통해 불량 채권 정리 자금으로 투입하리라 한다.
한편 조세의 조기 횟수를 중단함으로써 생기는 세수결함도 외곡 판매대전으로 메워 당초 예산대로 집행할 것이라 하므로 정부는 이제 민간 부문이나 재정 부문이나 다같이 외자로 보완 경기대책을 집행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셈이다.
확실히 수입을 늘려 물가를 억제하고, 경기를 자극한다는 방법은 현재의 실정으로 보아 불가피하다 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외 부채를 누적시켜 당면 문제를 고식적으로 해결하려는 이러한 방법이 근시안적인 것이라는 데에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우리의 경기 대책이 선진국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일시적인 후퇴에 대응하는 성질의 것이라면 대외 부채를 증가시켜 경기를 회복시키는 동시에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방법이 그리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국제수지가 장기적으로 호전될 재료를 찾기 힘드는 상황임을 직시한다면, 단기시책을 위해 스스로 장기 교란요인을 형성시키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충분하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경기시책을 꼭 집행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치밀한 분석을 해야 하겠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외환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경기를 자극하려 하기 때문에 물자 차관의 확대를 당국이 생각하는 것 같으나, 그렇다면 외환 및 국제수지에 대한 장기 분석은 정책 논리상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차관 원리금 상환 압박 때문에 외환 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데 외환 면에 뚜렷한 호전 자료가 있다는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 한 장래 부담을 무릅쓰고 부채를 누적시키는 것은 일종의 위험이라고 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국이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굳이 물자 차관을 확대하려 한다면 그에 앞서 납득할 수 있는 국제 수지 전망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그 동안 성장을 주도하던 차관기업·정책기업들이 재무구조·원가구조 면에서 근원적인 부실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적인 요인을 개선할 묘안을 찾지 못하는 한, 경기 회복을 위한 지원 금융은 이른바 「밑 빠진 시루에 물 붓기」식으로 될 공산이 짙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구제금융이 성공한 예가 흔하지 않다는 사실로 보더라도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금융은 오히려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인위적이며 일반적인 구제금융으로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것은 낭비에 가까운 것임을 당국은 직시해야 하겠다. 오히려 일반적인 불황 정책으로 열등기업을 일단 정리하고 경제 규모와 차관 등을 정리한 연후에 경기 회복책을 집행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지 당국은 깊이 생각하는바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