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씨 투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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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60년대 중반 '무진기행''서울 1964년 겨울''서울의 달빛 0장' 등 주옥 같은 명편들을 남긴 소설가 김승옥(62)씨가 지난달 23일 중풍으로 쓰러져 현재 경희대 한방병원에 입원중이다.

5일 경희대 병원 3632호실에서 만난 김씨는 "오른쪽 반신 마비가 심하다"는 전언과는 달리 겉보기에 멀쩡해 보였다. 병문안 왔다는 기자의 인사에 선선히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도 청했다.

하지만 언어장애가 심각했다. "갑작스레 이런 일을 당하셔서 안타깝다. 쾌차를 바란다. 몇가지 여쭤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마비가 오지 않은 왼손을 곧게 펴서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며 "더더더더…"할 뿐이다.

옆에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부인 백혜욱(59)씨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통역'해준다. "말을 하실 수 없다면 필담은 가능하시겠느냐"는 물음에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백씨는 "'의사가 필담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않으니 하지 말라고 했다'는 뜻이다"라고 전한다.

김씨는 64년 '사상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 '무진기행'에서 작중 주인공의 고향 무진의 안개를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사람의 힘으로 헤쳐버릴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뚜렷이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묘사했었다.

늪 같아서 그 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무진의 안개, 그 안개 같은 병마가 이번에는 현실의 김씨를 엄습한 것이다.

62년 '생명연습'으로 등단, 77년 '서울의 달빛 0장'을 쓰기까지 김씨가 활동한 기간은 77년 이후 사실상 절필 기간에 비교하면 턱없이 짧다. 하지만 그가 전후 한국 문학사에 남긴 뚜렷한 족적은 물리적인 활동 기간 이상이다.

김씨는 전후 문학의 음울한 분위기와 허무의식을 떨쳐버리고 형식.내용 양면에서 한국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문단의 총아였다. '신세대 문학의 기수''감수성의 혁명을 가져온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80~90년대 후배 문학도들에게도 당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참신한 충격을 주었다.

80년대 들어 하나님을 체험했다며 신앙에 매달리느라 작품에서 멀어졌던 김씨는 최근에는 안중근 기념사업회 일에 관여하기도 했다. 99년부터는 세종대 교수로 임용돼 강의를 했으나 이번 학기엔 병가를 낸 상태다.

다행히 김씨의 상태는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다. 김씨의 부인 백씨는 "지난달 23일 쓰러진 후 이틀 동안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간신히 앉아 있기는 했지만 왼쪽 뇌에 풍(뇌혈전)이 와 오른쪽 팔다리가 완전히 마비됐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사고 당일 문우들과 함께 저녁을 들면서 "이문구씨 병문안을 가야겠다"는 대화까지 나눈 후 차를 몰기 위해 운전석에 앉은 채로 변을 당했다.

부인 백씨는 25일께 "김씨의 오른손에서 희미한 움직임을 느꼈다"고 했다. 4일 처음 입원했던 일산의 병원에서 경희대 병원으로 옮겨온 후에는 상태가 더 좋아져 오른손으로 수저질을 할 수 있을 정도라는 얘기다.

김씨의 담당의사인 배형성 한방순환기내과 교수는 "김씨는 말은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언어중추 뇌세포가 괴사돼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며 "고비는 발병 후 두달 무렵이다. 그때 가서 경과를 확인해 봐야 한다. 뇌세포의 특성상 손상된 부위가 다시 살아나기 어렵지만 100%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남편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지금은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병상 한쪽에는 국회의원 김홍신, 김씨가 몸담고 있는 세종대 등에서 보낸 난 화분들이 싱그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씨가 머지않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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