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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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는 기쁠 때 만세를 부른다. 축하할 때도 만세를 부른다. 운동경기에서 이겼을 때도 누구나 제물에 우세를 터뜨린다. 그 모든 만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고도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3·1운동 당시의 만세소리였을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만세를 불렀다. 기뻐서가 아니었다. 일제에의 항거의 표시였던 것이다.
「만세삼창」이 생긴 것을 일본에서는 1889년2월부터였다. 이때 새 헌법 발포를 기념해서 명치 천황의 근병식이 있었다. 그를 반기기 위해 궁성 앞에 늘어선 「1고」학생들이 만세삼창을 부르기로 했었다. 얘기로는 만세를 부르자 말들이 그 소리에 놀라 날뛰는 바람에 이창까지 밖에 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이전까지는 만세를 부르는 버릇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만세삼창이란 한·일 합병 후부터 생겨난게 틀림없다.
국산영화나 「텔리비젼·드라머」에선 합병을 전후한 시기를 흔히 한국인이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고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 천황을 위해 마련됐던 「만세」를 독립을 부르짖는 민족적인 운동 때 불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몹시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씨와 정신이다. 무슨 표현의 형식을 쓰든 상관은 없다.
또 그때「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뛰쳐나오던 아낙네들, 「파고다」공원에서 만세를 부르던 어린 학생들의 애국의 열정은 아무도 헐뜯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은 3·1절. 그 53주년을 맞는 기념행사가 거창하게 펼쳐지고 있다. 물론 「만세」소리도 전국에서 들린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53년전 「만세」소리에 담겨졌던 얼은 잊혀져만 가고 있는 것 같다.
「만세」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는 3·1운동 때까지 길게 잡아서 2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짧은 동안에 시골농부의 입에서까지 절로 「만세」소리가 나올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아무도 그 유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까마득히 잊을 만큼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3·1운동의 의미는 단순한 독립의 정신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한·일 관계가 정상화된지도 오래된 이제 반일·항일의 자세는 무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에 우리나라 구석구석에까지 스며든 일본의 새 물결에 우리는 거의 저항감조차 잃고 있는게 아닌가 느껴질 때가 많다. 그것은 저항과 주체의식이라는 의연하고 강인한 정신에서 나온 「만세」소리를 국민이 전혀 잊어버린 때문이라고만 여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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