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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와 '오로라공주'의 사이 … 팬 서비스와 팬 무시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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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근 팬이 된 드라마가 있다. tvN의 ‘응답하라1994’다. 지방 학생들이 모인 서울 신촌의 하숙집을 무대로 1990년대 대학문화·로맨스 등을 버무렸다. 이 드라마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예능 출신 PD·작가의 예능적 제작방식이다. KBS ‘1박2일’팀이 케이블로 자리를 옮겨 ‘응답하라1997’ ‘1994’ 2편 연속 히트를 쳤다. 작가도 6명이다. 미드식의 집단창작이다.

 영화 마케터 출신으로 최근 TV 드라마와 예능 홍보를 하고 있는 한 지인은 예능의 힘에 거품을 물었다. “예능에서는 매일 회의다. 재미있나, 시청자가 뭘 원하느냐가 기준이다. 방송 직전까지 뜯어고친다. 작가나 감독 한두 명의 상상이 아니라 여럿이 토론하고 취재한다. 작가들도 방에 파묻히는 대신 촬영·편집현장에 나간다.” 그는 또 “1000만급 영화가 이어지지만 지금 한국 영화는 콘텐트의 힘보다 플랫폼(배급력)의 힘으로 흥행하고 있다. 사회 트렌드를 주도하는 최강자는 예능이다. 당장 현실에 무슨 이슈가 터지면 그걸 대본에 집어넣는다. 그만큼 현실 밀착력이 크다. 또 ‘무한도전’이 가요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말하자면 ‘응답하라1994’는 그런 예능에서 축적된 힘과 순발력을 드라마에 가져와 바람을 일으킨 경우다. 젊고 새로운 제작어법으로 무장한 ‘뉴케드(새로운 케이블 드라마)’ 열풍의 선두주자란 평이 그래서 나온다.

 ‘응답하라1994’는 드라마 자체가 아예 관객과 ‘밀당게임’ 구조로 돼 있다. 여주인공의 미래 남편이 누구일까에 대한 힌트를 매회 조금씩 던진다. 방송이 끝나면 온라인에서는 각종 추측이 쏟아진다. 신원호 PD 역시 “남편감으로 생각해 놓은 사람은 있지만 확정은 아니다”고 했다. 시청자 의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열린 구조다. 최대한 관객 반응에 맞춰 가겠다는 팬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문득 드라마 폐지 청원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MBC ‘오로라공주’가 생각난다. 황당무계한 전개에 하루아침에 중도 하차한 주요 인물만 10여 명. 어떤 비상식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여줘 악명 높은 드라마다. 물론 작가와 방송사는 꿋꿋하다. 두 번째 연장설이 나오는 가운데 요즘은 드라마 내용을 사전에 알려주는 하이라이트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임성한표 노이즈마케팅 효과 등등으로 시청률은 10%대 중반. ‘어차피 시청률은 나오니 뭐라 하든 내 맘대로 쓴다. 보기 싫으면 보지 마라’는 팬 무시가 극에 달한 드라마다.

 한쪽은 케이블방송에 예능 출신 외인부대, 다른 한쪽은 거대 지상파에 수십억원 몸값 스타 작가. 한쪽의 친절한 팬 서비스 정신과 다른 한쪽의 고압적인 팬 무시. 간극이 커도 너무 크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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