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헌>㉮
국회는 6월2일 제3차 본회의에서 헌법을 만들어 30명의 기초위원과 10명의 전문위원을 뽑아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기초 위는 유진오씨 안을 원안으로 하고 권승렬씨 안을 참고 안으로 하여 심의에 착수했다.
당시 이 박사 등 몇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내각책임제를 한다는데 이론이 없었고 한민 당에서는 이를 당 책으로 정해 놓고 관철키로 했다.
헌법기초는 이 같은 대세에 따라 말썽 없이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하루는 해 공 신익희 부의장을 불러 국회운영문제를 협의하던 중 이박사가 불쑥 헌법기초문제를 꺼냈다.
『이보라구, 해 공. 앞으로 국회가 할일 중에서 제일 중요한일이 헌법을 만드는 일인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지 매우 걱정이 됩니다.』
『지금 기초 위에는 법률전문가들이 많이 초빙돼 있으니까 너무 염려 마십시오.』
『우리 나라 사람가운데 법률전문가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곧 민주주의를 모르는 왜놈들 밑에서 법률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겠소.』
사실 당시는 일본영향 때문인지 99%가 모두 내각책임제를 주장했고 대통령중심제를 진언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때 헌법기초위원장인 서 상일 의원이 이화 장을 찾아왔다. 『이보라구, 서 의원. 헌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보다 정부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니 되도록 빨리 기초를 끝내도록 하시오. 만약 잘못된 점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고칠 수 있으니 미국헌법을 갖다 놓고 서두르시오.』
『미국헌법은 대통령중심제로 돼있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내각책임제라니 그거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대통령중심제로 해야 합니다.』
서 상일 위원장으로부터 이박사가 내각책임제를 반대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김성수 선생 등 한민 당 간부들은 숙 의를 거듭했지만 역시 종래 방침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사실 한민 당은 어디까지나 이 박사를 대통령에 추대하되 상징적 존재로만 추대하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에 대거 참여하여 실권을 쥘 속셈이었다.
30명의 기초위원 중 서 위원장을 비롯하여 반수가 한민 당 출신이었고 몇몇을 제외한 다른 위원들도 내각책임제를 찬성하고있어 기초 위에서는 별 말썽 없이 이 방향으로 조문을 작성해 나갔다.
그러나 이화 장과 계 동(김성수 선생 댁) 헌법기초 위간에는 미묘한 3각 관계에 얽혀 사람들이 빈번히 드나들었다.
한민 당에서 내각책임제를 끈덕지게 밀고 나가는 까닭에 대통령중심제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이 박사는 인 촌을 이화 장으로 불렀다. 한동안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던 이박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 볼 것 같으면 한민 당 사람들은 모두 국내에서 활약하던 분들이라 누구보다 국내사정에 밝습니다.』
『물론 그런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데 지금 나라가 혼란해서 앞으로 정부가 서면 한민 당이 이끌어 나가야될 줄 압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민 당은 우 남 장 형님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정부수립에 적극 참여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보라구, 인 촌. 내 부탁은 그런 말이 아니고 앞으로 정부를 세우면 한민 당에서 대통령까지 해줘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 이승만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한 것이지 대통령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남기고 이 박사는 방을 나가버렸다.
이박사의 끈덕진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초 위는 내각책임제를 골자로 한 헌법초안을 통과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
서 위원장으로부터 심의종결을 보고 받은 이 박사는 『이제 내게 할 말이 끝났거든 어서 돌아가 보시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박사는 2, 3일 동안 별로 말도 없이 얼굴에는 걱정만 가득한 듯 했다. 그러나 이 박사와 기초 위간의 견해차이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6월22일 이 박사는 헌법기초 위에 직접 참석하여 흥분된 어조로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여러분들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초안을 심의 종결했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양원제는 우리같이 가난한 나라에서는 국가의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입니다.
또 내각책임제란 영국처럼 상징적인 군주제 하에서거나, 정치가 안정된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회 안에서 어느 정당이든 안정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원만하게 운영되는 것이지 우리 나라처럼 정당이 난립한 나라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나라꼴만 어수선해지고 혼란만 거듭될 것이 뻔합니다… 그런고로 나는 국회가 만일 내각책임제나 양원제를 채택한다면 국회의원이고 뭐고 다 고만두고 국민운동이나 벌일 것이며 정부수립에도 참여 않겠습니다.』 <계속>계속>제>
(389)<제자는 필자>|<제26화>경무대 사계(16)|윤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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