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할인에 곳곳 주민·업체 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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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4일 경기도 파주시 운정신도시 내 한라비발디 정문에 ‘할인분양 입주자 절대 이사 불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입주민들은 플래카드를 건 채 입주 예정자들의 진입을 45일째 막고 있다. 건설사 측이 분양가 대비 최대 30%까지 할인 분양한 데 따른 반발이다.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 할인판매가 입주민과 건설사·분양대행사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할인 분양을 하면 먼저 들어온 사람이 손해”라며 일부 입주민이 분양용 견본주택 출입을 막는가 하면, 건설사와 분양대행사는 이런 주민들을 경찰에 고소하거나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

 지난 12일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 내 한라비발디 플러스 아파트. 담장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후문은 봉쇄됐다. 정문 입구 양쪽엔 천막 2개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주민 10여 명은 들어오는 차량과 사람을 일일이 점검했다. 단지 내 미분양 아파트에 꾸며놓은 견본주택에 외부인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미분양 할인판매를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런 상황은 10월 1일 시작해 40여 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 아파트는 올 4월 입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9월까지 823가구 중 487가구(59%)가 팔리지 않자 시행 및 시공사인 한라건설이 지난달 할인분양에 나섰다. 당초 분양가 3억5000만원이던 112㎡형을 2억6500만원으로 8500만원 깎은 값에 내놨다. 주민들은 이에 반발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견본주택을 보러 오는 이를 막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비대위원은 “빚까지 내 집을 산 기존 입주자만 바가지를 쓴 꼴이 된다”고 말했다.

 저지가 계속되자 한라건설과 분양대행사인 ㈜건한은 최근 주민 대표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데 이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건한 최동엽 이사는 “미분양 할인판매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며 “주민들이 이를 막을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부천시 중동 리첸시아 아파트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2월 입주가 시작됐으나 1년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572가구 중 257가구(45%)가 미분양 상태다. 지난 12일 들른 이곳에선 견본주택이 마련된 건물 현관에서 주민 4명이 ‘중단하라 할인판매’ ‘재산권 침해 말라’고 쓴 어깨띠를 두른 채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미분양 물량을 처리하려고 7억3000만원이던 159㎡형을 6억6000만원에 내놓자 주민들이 저지하는 것이다.

 이태덕(50) 비상대책위원장은 “시공사인 금호건설 측이 미분양 할인판매를 할 때 기존 입주자들에게 할인액만큼을 돌려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분양대행사인 ㈜유니디 측은 “미분양인 257가구는 금호건설이 아니라 시공사인 금호건설에 자금을 대준 금융회사(대주단)와 시행사의 것”이라며 “아파트 지분에 대해 권리가 없는 금호건설이 한 약속은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유니디는 최근 비대위 소속 주민 6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 회사 우영진 기획관리실장은 이런 말도 했다. “안 팔리면 값을 내리는 건 당연한 시장 원리 아닌가. 입주민 마음은 이해하지만 시행사 자금 흐름 등을 생각하면 할인을 해서라도 팔 수밖에 없다. 마냥 빈 집으로 놔둘 수도 없는 일이다. 할인을 해서라도 분양이 다 되면 아파트 값이 오르는 효과도 있다.”

 이처럼 미분양 땡처리를 놓고 입주민과 건설사·분양대행사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지만 해소 대책은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경기도 측의 입장이다.

 현재 수도권 일대에서는 연말까지로 제한된 양도소득세 면제(전용면적 85㎡ 이하 또는 6억원 이하) 기간이 끝나기 전에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한 대대적인 아파트 할인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경기도 고양시 ‘삼송 아이파크’ 분양가를 최대 1억원까지 깎아주고 있다.

글·사진=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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