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옌 다니엘 … 폐허 속에서 움튼 작은 희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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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중부를 휩쓴 지 엿새째인 13일.

 타클로반의 생존자들이 공항으로 몰리고 있다. 다른 병원이나 구호기관들이 모두 태풍 피해로 문을 닫아, 의약품과 식량을 약간이나마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공항 터미널 밖으로 이어진 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생존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타클로반 공항에서 근무하는 의사 카트리나 카테베는 CNN 인터뷰에서 “약품이 거의 동났다. 링거가 조금 남아 있는데 그마저도 다 떨어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따금 군인들이 공항 터미널에 들어와 타클로반을 떠나는 군용기에 탑승할 ‘운 좋은’ 몇 명의 이름을 호명하기도 한다. 어린이와 노인, 위급 환자가 우선순위다. 공항 터미널 한편엔 흰 천이 덮인 시신이 방치돼 있다. CNN의 앤더슨 쿠퍼 특파원이 전한 현지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절망의 땅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며 간이로 마련된 신생아 보호실에서 잠들어 있는 세 명의 갓난아기를 소개했다. 한 아이의 엄마는 “아들인데 ‘하이옌 다니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태풍 하이옌과 공항의 공식 명칭인 ‘다니엘 Z 로무알데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중앙일보·JTBC에 태풍 피해지역의 상황을 전하고 있는 CNN 특파원들은 국제사회의 구호활동이 시작됐지만 아직 현장까지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클로반 시내를 둘러본 결과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확인할 수 없었다. 레이테의 주도인 타클로반은 그나마 피해 현황이라도 파악됐지만 주변 20여 개 마을은 아직도 통신이 끊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필리핀 정부가 발표한 공식 사망자 수는 2357명으로 늘었다. 마닐라와 타클로반을 연결하는 도로는 13일이 돼서야 복구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민간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류도 구호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전상의 문제 때문이다. 현재 필리핀 인구의 4.7%에 달하는 390만 명이 총기를 갖고 있다. 민간 구호단체가 경호 없이 움직이기 힘든 이유다. 절망에 빠진 주민들에 의한 총기 사고도 우려된다. 필리핀 정부는 12일 무연고 시신의 매장을 허가했다. 시신 방치에 따른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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