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심」의 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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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8년간 「정글」속에 숨어살던 일군 패잔병 「요꼬이」씨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왜 잡혀서 포로가 되기를 그토록 이나 꺼렸겠느냐 하는데 있다. 또 하나는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 장구한 세월을 통해 삶에의 의지를 잃지 않게 하였느냐는 데 있다. 일본 사람들이 두 개의 문제를 다「야마또고꼬로」 (대화심)로 풀어내려 한다. 그렇지만 이게 또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것이다.
「나치」때 강제 수용소의 지옥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던 사람이 있고, 그러지 못해 어이없게 쓰러진 사람도 있었다. 후자 중에는 오히려 육체적으로는 건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강제 수용소 생활을 이겨내게 한 것은 언젠가는 「나치」가 패배하리라는 굳은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이런 악에 손쉽게 굽힐 수 없다는 인간적인 긍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 동란 중에 미국 사람들이 가장 치욕으로 여긴 일은 공산군에 잡힌 미군 포로 중에 변절자가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변절로 누구나 보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포로들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몰아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변절하고 자기 나라를 배반하는 일 같은 것은 없는 편이 좋다. 가령 미군이「요꼬이」씨의 처지에 있었을 때 그만큼 견딜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은 큰 의문으로 남는다. 이래서 「요꼬이」씨가 더 신기해지는 모양이다. 두말할 것 없이「요꼬이」씨를 끝까지 지탱해준 것은 천황에의 충성심이었다.
고국에 첫 발을 내디딘 그가 「하네다」 공항에서 한 첫 마디는 『낯을 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천황에 대한 낯을 뜻한다. 그는 『천황 폐하에게 충분히 봉사하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부끄럽다』고 사죄하기도 했다.
최고조에 젖어 있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이런 그가 영웅시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늘날의 일본인들에게는 그만한 구심점을 이제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던 안타까움도 섞여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또 하나 궁금해지는게 있다. 『낯을 들 수 없다』는 「요꼬이」씨의 말을 천황 자신이 전해 들었다 치면, 그는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하는 점이다.
그는 분명히 한 사람의 삶을 22년간 「정글」 속에서 썩도록 몰아놓은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책임은 비단 「요꼬이」 한 사람에게만 느낄 성질의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낯을 들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천황 자신이어야 함을 천황은 느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얼마든지 떳떳하게 낯을 쳐들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낯을 들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기막힌 마술이었나 싶어 새삼 몸서리 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실상 이런 마술은 그것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온 세계에 작용하고 있다는데 현대 정치의 병증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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