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색종이 역사 中보다 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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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한국에서 색종이는 언제부터 만들어 썼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 공대에 있는 미국 종이박물관을 찾아갔다. 모두 세 건의 미공개 자료를 발견했다.

미국의 제지학자 다드 헌터(Dard Hunter.1883~1966)의 저서들이다. 그는 1933년 한.중.일의 제지소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세계의 제지문화를 연구한 학자다.

헌터는 자서전에 "한국인은 종이의 원료인 섬유에 직접 천연 염색을 한 색종이를 세계 최초로 사용한 민족"이라며 "이는 종이 발명국 중국보다 한참 앞선 것(so anticipated)"이라고 적고 있다.

이어 "한국인의 색종이는 금세 선명도를 잃는 현대의 색종이와 달리 수백년이 지났어도 밝은 색깔을 유지하는 내구성을 지녔다"고 밝혔다('My Life with Paper'. 1958.p222).

다른 저서에선 "종이 선진국이었던 중국에서 7세기에 공문을 노란색 종이에 쓴다고 발표했는데 당시의 염색 방식은 종이 표면에 색깔을 입히는 수준이었다"며 "그에 비해 섬유에 직접 염색하는 방식은 한국에서만 발견되며 최초 제작 시기는 7세기보다 수백년 이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Papermaking'.1947.p204).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국내외 문헌이나 증거는 없다.

◆찬반 양론=다드 헌터의 기록은 명쾌했지만 구체적이지 못했다. 한국이 언제부터 종이를 염색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팬아시아 종이박물관(전 한솔종이박물관) 김중태 학예연구실장은 "다드 헌터는 세계의 종이 역사에서 교과서와 같은 사람"이라며 "관련 기록이 달리 없는 상태라면 헌터의 권위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황 증거를 대며 반대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종이가 들어올 때 염색 기술도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의 고대 종이는 황지(黃紙)라 불렸는데 이는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레 노란 물을 들인 것이다."(한솔파텍 유광렬 과장)

◆염색 문화=서울 인사동에서 한지(韓紙)를 연구해온 서지학자들의 설명은 보다 상세했다. 한국의 염색 문화는 분명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중국에서 마지(麻紙)를 염색해 가공했다는 6~7세기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한국의 관련 유물은 8세기 것이다. 종이가 중국에서 전래된 시기도 2세기부터 7세기까지 설명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염색 기술의 기원은 사실상 규명이 불가능하다."(한지 사학자 김경호)

"한국의 염색 문화는 사경(寫經)문화를 통해 발전했다. 고려시대의 '감지은니 불경견삭신변진언경'(국보 210호.사진)이 대표적 예다. 천연 염료로 색을 입힌 종이는 벌레가 스는 것을 막아줬다.

한국에서 염색 문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은 종교와 접목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염색문화는 뛰어났지만 기원을 아는 이는 없다."('문우서림' 대표 김영복, '법보신문' 김형규 기자)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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