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이런 '콩가루 집안'도 없다 … 영국식 블랙유머의 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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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마틴 에이미스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424쪽, 1만4000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가상의 공간인 영국 런던의 디스턴에 사는 페퍼다인 집안은 콩가루 집안의 지존급이다. 열다섯 살 소년 주인공 데스먼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피부색으로 미뤄 짐작할 때 흑인이라는 것만 추정할 뿐. 열두 살 나이에 데스먼드를 낳은 엄마는 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이 집안에서 미혼모는 당연지사고, 청소년기 출산은 집안 내력이다. 외할머니인 그레이스도 열아홉에 이미 일곱 명의 아이가 있을 만큼 조숙(?)했다. 데스먼드의 외삼촌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겉도는 인물로 살아간다. 그 중의 최고봉은 라이오넬이다.

 엄마를 잃은 데스먼드를 키운 라이오넬은 ‘망나니계의 레전드’라 칭할 만한 문제적 인간이다. 데스먼드보다 여섯 살 많은 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무식하지만 범죄 혐의나 형사재판 용어에는 웬만한 변호사를 뺨 치는 인물이다. 더욱 가관인 건 페퍼다인이라는 자신의 성을 ‘반사회적행동금지명령(ASBO)’을 뜻하는 애즈보로 바꾼 것이다.

 영국 문단에서 ‘새로운 불쾌함의 대가’라는 수식어를 꿰찬 작가는 영국식 블랙 유머의 정수를 보여준다. 온갖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어머니의 자유로운 성생활에는 신경을 곤두세운 라이오넬은 어머니와 성관계를 맺은 소년을 조용하면서도 잔혹하게 처리한다.

 외삼촌의 무자비함은 데스먼드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다. 런던대에 진학할 만큼 공부도 잘하고 고운 성정을 지녔지만 열다섯 살 때 외할머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비밀 탓이다.

 문제는 이런 사건들이 불편하지만,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미 한번쯤은 보고들은 듯한 일들이라는 점에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하는 디스턴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 같다.

 게다가 대학을 나와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리며 착실하게 살아가는 데스먼드가 집 한 채 없이 가난에 허덕일 때 감옥에서 빼앗은 로또가 당첨돼 돈벼락을 맞은 라이오넬이 인생 역전에 성공한 모습은 씁쓸함을 더한다. 돈방석에 올라앉은 라이오넬이 사회명사가 되고, 라이오넬의 기행이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하는 미디어의 천박함까지 더해져 돈이 최고의 미덕이 된 자본주의의 우울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점에서는 그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줄리언 반스 등과 함께 영국에서 ‘골든 제너레이션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알 듯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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