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교조에 '반성문' 써준 교육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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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광주시교육감이 교장 인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전교조 광주지부의 요구에 따라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반성문'에 서명한 것은 어이없고도 개탄스러운 일이다.

과오를 시인했으면 됐지 문서화까지 한 교육감의 처신은 비겁한 자세이고, 이를 강요한 전교조는 인사권을 침해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번 파문은 광주시교육청이 과거 비리에 연루된 사람을 일선 교장으로 발령한 데서 비롯된 것이어서 교육감이 말썽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반성문을 써야 할 정도였다면 교육감은 처음부터 신중하게 인사권을 행사했어야 한다.

더구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주의' 인사를 했다면 비교육적인 행정이다.

전교조 또한 정당한 절차를 거친 이의 제기나 건의 수준을 넘어 반성문까지 강요한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로서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전교조는 학생들이 이를 본받아 문제 교사에게 반성문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사태는 교육관련 시민단체와 교육당국이 앞으로 인사권 행사를 둘러싸고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힘겨루기의 전초전으로 보인다. 새 정부는 교사회를 법제화해 학교 운영에 참여시키고 개혁적인 외부인사를 학교장으로 영입하는 정책을 도입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발맞춰 전교조는 교원 인사 비리 접수 창구를 개설하고 문제있는 인사에 대한 퇴진운동을 벌이겠다는 태세다.

교원단체가 참여하는 인사 검증장치 마련과 인사위원회 회의자료 공개 요구가 적절한지는 차치하고, 자칫하다가는 국민의 정부 때 교원 정년을 단축하면서 교육계가 일대 소용돌이에 빠진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교육 경쟁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때에 정부와 전교조가 마냥 대립만 하고 있을 것인지 국민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