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시인』편모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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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시를 읊고 인생을 이야기 하다가 63년6월3일 병석에서 숨을 거둔 공초 오상순씨의 유품 및 그의 상징인 「청동 문집」 50책이 6일부터 13일까지 영등포구 고척동에 있는 동양공전에서 전시되고 있다.
공초의 제자이며 말년에 한동안 곁에서 공초를 모셨던 심하벽씨 (시인·동양공전교사)가 소장해온 이 전시품들은 양말·넥타이에서 담배 쌈지·파이프·안경에 이르기까지 공초 운명시 그의 소지품의 전부. 무의무탁했던 「고독한 시인」의 편모를 엿볼 수 있다.
「청동문집」은 57년 봄에 시작되어 1백10호가 나올 때까지는 「청동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1백11호부터는 「청동 산맥」이라는 제목으로 공초가 타계하던 해인 63년4월까지 모두 1백95권이 나왔는데 심씨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50권. 이밖에 1백여권은 공초가 일정한 주거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일실 되었으리라는 심씨의 이야기다.
백지로 엮어 늘 공초가 가지고 다니면서 문우와 제자들의 글을 받아놓았던 「청동 문집」은 낙서 문학이라는 이색적인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유명했으며 여기 실린 글들은 한결같이 재미있다.
공초와 꽤 깊은 교우 관계를 갖고 있었던 청담 스님은 <에끼! 이순! 이 늙은 도적놈! 청동 산골 컴컴한 굴속? 게다가 연막까지? 아마도 대천 세계는 이놈 바람에 …새 마저 ! 청동산 천년강 만년달!>이라면서 애교 섞인 비난을 퍼부었고. 월탄 (박종화씨) 은 <생화 속에 노는 공초, 자네 것이 되었구나. 청산의 범나비 네 멋대로 날려라>고 공초의 옆모습을 그렸다. 기애 (양주동씨)는 <안자서 보노라 하니 우숨 겨워하노라>고 짐짓 공초를 비꼬았는가 하면 미당 (서정주씨)은 <안녕하셨는가 백팔의 번뇌 내 고향의 그리운 벗들>이라는 가장 짧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두계 (이병도씨)는 <공초, 비공초. 호호공초>라고 공초를 표현했다.
「청동 문집」에는 년 5천점 이상의 작품이 수록된 것으로 추산되는데 심씨 소장분만도 2천 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품 가운데는 제자인 여대생이 선사했다는 「넥타이」한점이 시선을 끌고 있는데 그것은 한가운데 미화 1「센트」짜리 동전을 넣어 곱게 꿰맨 것. 이밖에 10여년 동안 보물처럼 공초가 귀하게 다루었던 「파이프」, 19세기형의 「선글라스」, 그리고 공초가 모은 제자 친지들의 명함 3백여장, 편지 3백여통이었다. 모든 편지의 수취인 주소가 「청동」「서라벌」「창일」「향지원」등 명동의 다방으로 돼 있는 것도 재미있다.
60년11월4일 「펄·벅」여사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예술원이 베푼 「파티」에서 공초를 위해 쓴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한 자루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더 낫다> (영문)는 글. 그리고 59년 예술원이 그에게 회원 수당 (매달 1만6천 환)을 지급한다는 통지서 등도 유품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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