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충북지방농촌실태 현지취재|수지 불균형·느는 이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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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본지 「손거울」난에 어느 농촌 주부가 『도시의 여인들에게』란 글을 투고한 적이 있다. 『그 아까운 벼이삭을 꽃꽂이로 보고 즐기다니, 가슴이 메어진다』고 도시의 여성들을 나무라는 글이었다.
「쌀」하나에 모든 생활을 바치는 한국의 농촌에선 도시에서의 쌀 문제가 가장 큰 관심의 촛점이 되고있다.
그리하여 「혼식장려」니「식생활개선」 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 큰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실감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오늘의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이렇게 쌀밥·보리밥식 생활수준의 차이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사철 매달리는 쌀 농사는 『밑돌 빼다 웃돌 쌓기』라고 표현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은 이미 버린지 오래고 어쩌면 비굴함까지도 간직한 체념의 생활로 자학할 만큼 쌀 농사는 수지가 많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라면 1년 안에도 집한채 벌 수도 있고 품팔이를 해도 「금잔디」 신세는 면할 수 있는데 그저 대대로 물러온 땅을 버리지 못해 쳇 바퀴고생을 하는 스스로를 재주 없는 인생으로 체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볍씨개량 등 농사지도를 담당하고있는 농촌생활지도소의 한 직원은『농사를 짓는 일에 희망을 붙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안타까와했다.
그것은 단순히 쌀 농사가 수지가 안 맞는다는 문제해결보다는 우선 여러가지농사를 짓는데 대한 부적들을 없애는 일이다.
비료판매를 농협에서 관장하는데 따른 문제만 해도 시간과 절차의 까다로움, 그리고 요소비료를 사면 잡비도 섞어야 한다는 등 수량에 있어서도 규제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적은 양, 필요한 비료를 마음대로 골라서 살수 없어 돈의 낭비를 시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료를 그 정가보다 한 부대 20여원씩 보통 예금형식으로 돈을 덧붙여 파는 일은 농민들에게 농협이 오히려 해를 준다는 인상을 갖게 하고 있다.
농사에의 실망 이미 많은 농민들을 도시로 몰려들게 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도『할 수 없어 있다』 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들을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키고 또 내자신도 거기서 자리를 잡고싶어 한다. 농촌의 교육열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활로」로 통한다.
이들에겐 올해 전국적으로 30∼70%의 증산을 본IR-667등의 개발과 이중곡가제의 더 큰 진폭에만 「실현성 있는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농촌에 일손이 모자란다는 말은 이미 몇 년 전부터의 얘기지만 지금도 「일손」 들은 떠나갈 준비로 조급하다. 농촌품삯은 하루1천원으로 서울벌이보다 못하지 않지만 1년 내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돈」에서 시작하여 열등감·좌절감으로 귀착하여 하나의 탈출구로 나가는 것 같다.
일손은 특히 처녀들의 가출로 두드러진다. 나주군청의 한 부녀 담당직원은 해마다 봄이면 역에 나가 부녀가출을 막는 일을 하는데『그들이 서울 가서 겨우 식모노릇 하면서도 왜 부모 곁을 떠나려고 하는지 안타깝다』 고 말한다. 도시에 대한 동경은 허영으로 볼 수 없고 아무래도 농촌생활, 그 속에 있는 것 같다.
『서울사람들은 농촌근대화라면 지붕이나 기와로 바꾸고 「트랙터」를 들여놓아 기계화하면 되는 줄 알지만 그것은 미국이나 「캐나다」면 몰라도 한국서는 달라요.』조각 조각의 영세농이 대부분이고 또 도시라고 해서 일자리가 많아 사람을 부르는 처지가 못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돈 많은 기계가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농촌지도소의 한 직원이 말했다.
더우기 농촌을 도시의 「시장」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긋난 현실이다. 흙을 이겨 만든 벽에 금방 쓰러질듯한 초가집, 시커먼 부엌에도 알록달록「플라스틱」바가지들이 들어찬 것을 봤을 때 순서가 어긋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국농촌에서 변한 것은 무명옷감이 「나일론」으로, 짚신이 고무신으로 바뀐 것 뿐』이라고 한 학자들의 말은 농촌의 구매력이 채 크기도 전에「물질」이 주사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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