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손거울」난에 어느 농촌 주부가 『도시의 여인들에게』란 글을 투고한 적이 있다. 『그 아까운 벼이삭을 꽃꽂이로 보고 즐기다니, 가슴이 메어진다』고 도시의 여성들을 나무라는 글이었다.
「쌀」하나에 모든 생활을 바치는 한국의 농촌에선 도시에서의 쌀 문제가 가장 큰 관심의 촛점이 되고있다.
그리하여 「혼식장려」니「식생활개선」 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 큰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실감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오늘의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이렇게 쌀밥·보리밥식 생활수준의 차이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사철 매달리는 쌀 농사는 『밑돌 빼다 웃돌 쌓기』라고 표현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은 이미 버린지 오래고 어쩌면 비굴함까지도 간직한 체념의 생활로 자학할 만큼 쌀 농사는 수지가 많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라면 1년 안에도 집한채 벌 수도 있고 품팔이를 해도 「금잔디」 신세는 면할 수 있는데 그저 대대로 물러온 땅을 버리지 못해 쳇 바퀴고생을 하는 스스로를 재주 없는 인생으로 체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볍씨개량 등 농사지도를 담당하고있는 농촌생활지도소의 한 직원은『농사를 짓는 일에 희망을 붙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안타까와했다.
그것은 단순히 쌀 농사가 수지가 안 맞는다는 문제해결보다는 우선 여러가지농사를 짓는데 대한 부적들을 없애는 일이다.
비료판매를 농협에서 관장하는데 따른 문제만 해도 시간과 절차의 까다로움, 그리고 요소비료를 사면 잡비도 섞어야 한다는 등 수량에 있어서도 규제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적은 양, 필요한 비료를 마음대로 골라서 살수 없어 돈의 낭비를 시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료를 그 정가보다 한 부대 20여원씩 보통 예금형식으로 돈을 덧붙여 파는 일은 농민들에게 농협이 오히려 해를 준다는 인상을 갖게 하고 있다.
농사에의 실망 이미 많은 농민들을 도시로 몰려들게 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도『할 수 없어 있다』 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들을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키고 또 내자신도 거기서 자리를 잡고싶어 한다. 농촌의 교육열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활로」로 통한다.
이들에겐 올해 전국적으로 30∼70%의 증산을 본IR-667등의 개발과 이중곡가제의 더 큰 진폭에만 「실현성 있는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농촌에 일손이 모자란다는 말은 이미 몇 년 전부터의 얘기지만 지금도 「일손」 들은 떠나갈 준비로 조급하다. 농촌품삯은 하루1천원으로 서울벌이보다 못하지 않지만 1년 내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돈」에서 시작하여 열등감·좌절감으로 귀착하여 하나의 탈출구로 나가는 것 같다.
일손은 특히 처녀들의 가출로 두드러진다. 나주군청의 한 부녀 담당직원은 해마다 봄이면 역에 나가 부녀가출을 막는 일을 하는데『그들이 서울 가서 겨우 식모노릇 하면서도 왜 부모 곁을 떠나려고 하는지 안타깝다』 고 말한다. 도시에 대한 동경은 허영으로 볼 수 없고 아무래도 농촌생활, 그 속에 있는 것 같다.
『서울사람들은 농촌근대화라면 지붕이나 기와로 바꾸고 「트랙터」를 들여놓아 기계화하면 되는 줄 알지만 그것은 미국이나 「캐나다」면 몰라도 한국서는 달라요.』조각 조각의 영세농이 대부분이고 또 도시라고 해서 일자리가 많아 사람을 부르는 처지가 못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돈 많은 기계가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농촌지도소의 한 직원이 말했다.
더우기 농촌을 도시의 「시장」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긋난 현실이다. 흙을 이겨 만든 벽에 금방 쓰러질듯한 초가집, 시커먼 부엌에도 알록달록「플라스틱」바가지들이 들어찬 것을 봤을 때 순서가 어긋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국농촌에서 변한 것은 무명옷감이 「나일론」으로, 짚신이 고무신으로 바뀐 것 뿐』이라고 한 학자들의 말은 농촌의 구매력이 채 크기도 전에「물질」이 주사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윤호미 기자>윤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