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김정은 언제라도 만날 것" … 전향적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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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3일 오전(현지시간) ‘한국 드라마 파티’가 열리고 있는 파리 피에르 가르댕 문화공간에서 K팝 수상자들의 공연을 관람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프랑스 현지인들이 주축인 한류 팬클럽 ‘봉주르 코레’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 드라마 주제가 배우기 등이 진행됐다. [파리=최승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6박8일 일정으로 서유럽 순방에 나선 박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첫 방문국인 프랑스의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물론 박 대통령은 “단순히 회담을 위한 회담이라든가 일시적인 이벤트성 회담은 지양하고자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은 당장 지난 5월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와 비교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고 했었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던 5월 상황에선 회동 자체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으나 지금은 ‘필요하면 언제든 만나겠다’는 쪽으로 기류가 유연해졌다는 평가다.

 최근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천안함 폭침 이후 남북 교역,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등을 불허하는 5·24 조치와 관련, “(해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경제 건설 병진(竝進)노선에 대해선 여전히 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박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북한이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을 좇는 것”이라며 “북한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의 굶주림이나 삶을 외면하고 있고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면 내·외부 난관에 봉착해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까지 말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6자회담 재개 여부에 따라 앞으로 정상회담 가능성도 없지 않고, 남북관계에서 정상회담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유화 제스처라기보다는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와 ‘대야 관계’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한·일 관계가 긴장 상태에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엔 한·일 관계를 독일·프랑스 관계에 비유해 답변했다.

 박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싶지만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에 대해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유럽의 통합은 독일이 (프랑스 등을 향해)과거 잘못에 전향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일본도 유럽연합의 통합 과정을 잘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야권으로부터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그 주장은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모범적인 국가 모델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같은 운명 가진 후계자”=르피가로는 박 대통령 인터뷰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소설과 같은 운명을 가진 후계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신문은 박 대통령이 1974년 프랑스에서 유학 중에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프랑스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아버지도 1979년 암살됐으며 박 대통령 자신도 2006년 지방선거 지원 유세 도중 테러의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르피가로는 아버지 암살 후 오랫동안 은둔기간을 거친 박 대통령은 야당 생활을 거쳐 ‘선거의 여왕’이 됐으며, 지난해 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청와대에 민주적인 방법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썼다.

파리=신용호 기자, 허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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