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덕현의 귀촌일기

그럴만허니께 그런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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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남덕현
귀농 수필가

필자가 살고 있는 시골집을 지은 건축업자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뭘 물어보면 딱 두 마디가 전부였는데, 대답이 그렇게 속 시원하고 믿음이 갈 수가 없었다.

 “돼유(돼요)! 왜 안듀(왜 안돼요)!”

 뭐든 다 된다지 않는가! 하지만, 대답과는 달리 필자의 의견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마당 오른쪽으로 수로(水路)를 내기로 해놓고 왼쪽으로 내놓은 식이었다. 일이 몇 번 그렇게 돌아가다 보니 처음에는 믿음이 가던 그의 대답도, 건축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무시당한다는 불쾌감보다 뭔가 속고 있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간혹 자초지종을 따지고 들면, 그의 대답은 마치 필자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한결같았다.

 “그럴만허니께 그런규! 사장님, 어디 가면 안 속을 거 같어유? 맴(마음) 편허게 잡숴유!!”

 불신이 쌓여 갔다. 필자가 보기에는 영 그럴만하지 않은 일들 투성이였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그가 예정에도 없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경량철골주택은 벽돌로 외벽을 쌓아주어야 겨울에 추위가 덜 하다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했으나 선뜻 내키지 않았다. 공사비를 부풀리려는 속셈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거듭되는 그의 설득에, 결국 필자는 그를 소개해준 장인어른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가만히 필자의 고민을 듣고 계시던 장인어른이 타이르듯 말씀하셨다.

 “농사꾼이나 건축업자나 뭘 맹그는(만드는) 사램(사람)들 아녀? 그럼 맹근 물건을 봐야지!” “츠음(처음)에는 몰라두 한 가지 일을 오래 한다는 건 절대 사램이 일 하는 거 아녀! 물건이 일 허는 거지! 벽돌 혀! 내가 돈 주께.”

 장인어른이 소개해 준 사람이니 안심하고 맡겼던 것이지, 그가 지은 ‘물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뒤늦게나마, 수소문하여 그가 지은 집들을 둘러보고 사는 사람들도 만나 보았다. 하나같이 반듯한 집이었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벽돌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럴만하니 그런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좁은 시골동네에서 평판이 나쁜 건축업자가 버틸 재간이 있었겠는가. 유난히 춥고 길었던 지난겨울에 벽돌 덕을 톡톡히 보았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겨울이 춥고 길다는데 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다만 아쉬운 점 한 가지는, 아직까지 장인어른께 벽돌 값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남덕현 귀농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