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마을에 무차별 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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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파주=장호근 기자】지난 27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휴전선 북방북괴초소로부터 3만여 발의 기관 포 사격을 받은 경기도 파주 군 오금 리, 낙하 리, 만우리 6개 자연부락은 북괴초소에서 1·5㎞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접 적지, 북괴초소에서 빤히 내려다보이고 기관 포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
북괴는 27일 상오 임진강하류에서 육군잠복조가 침투하려던 북괴무장공비 3명을 발견, 모두 사살했다고 발표하자 불과 몇 시간 뒤에 우리 군 초소와 평화스런 부락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무차별 보복사격을 가해온 것이었다.
북괴가 첫 번째 사격을 가한 것은 27일 하오1시40분. 우리 군 초소와 마을에 대고 갑자기 난사하기 시작했다. 이날 채소밭에서 김을 매던 오금 리 정낙인씨는 총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왔으나 점심을 먹던 3녀 순옥양(11·탄 현 국교 4년)과 4녀 은애양(6)이 피투성이가 된 채 마루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마을사람들은 호미자루를 쥔 채 제각기 집으로 달려가 온 식구를 솜이불로 뒤집어 씌우고 구석방에 웅크리고 앉았다.
정씨는 두 딸을 업고 미친 듯이 날아오는 기관총사격을 뚫으며 30리 떨어진 금 촌 도립병원으로 달려갔다.
북괴의 무차별사격은 5분 간격으로 계속되다가 4시간20분이 지난 하오 5시쯤에 멎었다. 이때까지 약1만발이 날아왔다.
총성이 잠시 멎자 오금 리 77가구 3백여 명, 낙하 리·금산 리 일대 7백여 명의 주민들은 저녁밥도 굶은 채 봇짐을 챙겨 5㎞ 떨어진 법흥리로 줄지어 피난길을 떠났다. 북괴의 두 번째 사격은 27일 밤8시부터 28일 새벽 3시까지 7시간동안, 계속 2만여 발을 난사했다. 28일 상오6시 총성이 멎은 마을로 남자들만 들어와 은애 양이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민들은 정씨 집에 모여 북괴기관 포에 구멍난 점심그릇을 바라보면서 북괴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북괴는 지난해 9월7일에도 침투해오는 무장공비를 아군이 사살하자 남은 공비들의 북상도주를 엄호하기 위해 기관 포를 난사, 오금 리 박규석씨(37)의 딸 은영 양(7)이 왼발에 맞아 중상을 했고 같은 해 6월4일 상오1시쯤에는 금산 리에서 잠자던 조인성씨부부가 기관 포에 맞아 중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북괴의 이 같은 만행이 자주 일어나는데도 이곳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비옥한 땅을 버릴 수 없어 불안 속에서도 산다고 했고 오금 리 김학기씨(65)는『조상의 묘까지 버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의 무차별난사사건이 일어나자 마을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탄 현 국민 교 6년 이기시 군(16)은『총을 마구 쏘아대는 북괴군이 정말 무섭다』고 불안한 눈초리로 말했다.
또한 탄 현 국교 장 심봉택씨는『북괴가 남-북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이 같은 도발행위를 벌이는 것은 그들의 근성을 드러낸 것』이라 지적하고『평화「무드」의 탈을 쓴 북괴의 흉계를 경계해야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곳에서 2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박양수씨(43)는『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농토를 버리고 이번에는 떠나야겠다. 북괴의 흉탄에 죽을 수는 없다』면서 고향을 등질 결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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