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줄탁(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지하(1941~) '줄탁(啄)' 부분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부화될 때가 되어 안에서 병아리가 처음 입질을 할 때 밖에서 어미가 그 기미를 알고 바로 그 자리에 '톡' 부리질을 하여 만나는 현묘한 순간(啄)이라니! 그때 그 장엄한 만남에 놀라 미나리가 땅에서 겁도 없이 나오는 것이다. 무에서 존재에로 이행하는 그 순간을 시로 완성하겠다는 요즘 김지하의 운명을 건 도박이 우리를 전율시킨다.

강형철<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