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문위기서 허덕이는 고서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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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학관계 연구의 자료 원 구실을 해온 서울 관훈동 일대와 동대문일대의 고서 점들이 차차 사라져 가고 있다.
몇 해 전까지 만해도 서울에 20-30여 군데나 있던 고서 적 상들이 이제는 관훈동·동대문에 2,3개소만 남았는데 그나마 관훈동의 계림서원(대표 김지헌·37)이 지난 8월1일부터 2개월 동안의 휴업 계를 내고 문을 닫아버렸다고 서점들이 이와 같은 운영 난을 겪고 있고, 또 하나씩 없어져 가는데 대해 고서적 상들은 수년동안 곳의 거래는 한산한 반면 세금만 계속 뛰어 올라 더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했다.
고서 점에서 주로 취급하는 책은 광복이전에 나온 고서와 그 이후에 간행된 고본 그리고 최근에 활발한 고서의 영인본이다.
고서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돈 없는 대학교수·연구 생 등이다. 골동품은 장식용으로 돈 있는 사람 상대지만 고서는 장식용과도 거리가 멀다. 고서가 꼭 필요한 학자들은 돈이 없어 못 사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호화판 신간을 사지 구태여 고서를 사려들지 않는다.
또 한문으로 된 고서를 해독할 수 있는 층도 차차 줄어들고 있다. 고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50대 이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대학원생이상으로 그 수요자가 극히 제한돼 있다.
또 고서는 붓 수가 한정돼 있어 나올 책은 이미 나왔고, 나온 책은 거의 주인을 찾아가 안정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해방직후와 6·25의 혼란기에 대부분 개인소장의 고서들은 다 나와 버렸으니 이제는 거래가 한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반거래가 없는 데다 요즘에는 대학도서관들도 도서구입예산은 많지만 실제로는 고서를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도서의 외국수출도 고서는 금지돼있어 고서의 판로는 완전히 막힌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6세 때부터 37년간 고서를 만져왔다는 통문 관의 이겸노씨(63)는『반평생을 바쳐온 고서이고 또 그 동안 아껴준 단골학자들에게 미안해서 적자를 보면서도 문을 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크고 전통 있는 통문 관이 이 정도이면 다른 고서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고서 점의 이 같은 퇴화현장을 재촉하는 것은 세금. 3년 전부터의 가중된 세금공세가 이제는 최악에 다다라 아직 문을 열어놓은 고서 점들도 이대로 가다가는 연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통문 관과 함께 비교적 고서가 많다는 계림서원·제1서점 등에 대해 세무당국이 매긴 71년도 상반기의 과세표준액은 초년 하반기의 1천만 원에 비해 70%가 오른 1천7백만 원. 이에 대해 업주들은 가지고 있는 고서를 모두 합쳐도 5백만 원 어치가 안 되는데 6개월 동안 1천7백만 원 상당의 고서를 거래했다고 추정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고서 점들이 현재 영업이 돼서 계속하고 있는 집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이 고서 점들이 하나씩 없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 고서점이 문을 닫으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은 국학을 연구하는 학생들. 이 고서 점에는 큰 도서관들도 다 구비하지 못한 희귀본들도 많기 때문이다.
여하간 고서점이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점을 생각할 때 이제 몇 집 남지 않은 고서 점에 대해당국은 조금이라도 육성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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