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동생에게<조동영씨의 동생 동 제씨>조동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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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제야. 무슨 말을 먼저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내가 남으로 탈출할 때 너는 평안중학교 2학년으로 형들의 귀염을 받는 어리광동이였었으나 살았다면 너도 이제는 40세로 장년 길에 들어 처자를 거느렸겠지.
아버님이 살아 계시면 79세, 어머님은 68세로 아주 백발이 되셨겠구나.
노령의 부모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비오듯해 이미 돌아 가셨겠거니 하고 애써 잊고있다.
내 뒤를 따라 월남하신 동 황 형님(51)은 동두천에서 극장을 경영, 단란하게 살고 계시다. 신의주에서 쌓은 장사경험이 큰 힘이 되셨단다. 동 황 형님은 여기 와서 아들하나 딸 둘을 더 낳아 모두 1남4녀를 두고 계시다.
네가 귀여워했던 코흘리개 선희(28) 는 재작년에 결혼, 아들을 낳았다. 선희는 자기 남편과 같이 음식점을 내 살림이 탄탄하단다.
부모님께 죄스럽고 내 자신 부끄럽다 만은 나는 월남 후 두 번이나 결혼했으나 현재는 50이 다된 주제에 혼자 살고 있다.
신의주 남제동에 있던 고래등같은 우리 기와집은 어찌됐나. 오래 전에 우리가족들은 지주 출신이라 하여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을 잡고있다는 소식까지는 들었으나 그후는 깜 깜이다.
내가 신의주학생사건으로 신의주에서 80리나 떨어진 의주의 사촌누님 댁에 피신하고 있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 너는 나를 잡으려는 보안대원의 사 술에 속아 나있는 곳을 알려 줬었다.
그 뒤 그들의 속셈을 안 너는 그날 밤 80리 길을 자전거로 달려와 나에게 잘못했다고 울면서 사과하고 나를 피신토록 한 일말이다.
월남 후 나는 다른 피난민들이 겪는 고초를 겪었으나 지금은 월남한 사람들의 단체인 이북5도 연합회에서 일을 보고 있다.
내가 월남할 무렵 앞산에 심어둔 밤·복숭아나무는 어찌됐는지, 그늘아래서 너와같이 회포를 풀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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