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감성 평결 논란 땐 … 참여재판 불신 커질 것 같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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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나꼼수 재판과 같은 결론이 나오면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불신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지난 28일 안도현(52·시인) 우석대 교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 전원일치 무죄 평결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선고를 연기한 전주지법 형사2부 은택(51) 부장판사. 그는 29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은 부장판사는 “(무죄 판결한) 나꼼수 재판을 두고 국민참여재판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며 “이로 인해 국민참여재판 불신론이 불거지는 상황이어서 고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일반 국민 눈높이에 따른 판단을 원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재판”이라면서도 한계를 지적했다.

 “배심원들은 전문 법률가가 아니다. 재판부의 법리적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헌법과 법률, 직업적 양심에 따른 법관의 판단이 배심원과 합치하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은 판사는 “참여재판이라고 (재판부가) 절대적으로 배심원의 결정에 따라 판단을 내리도록 돼 있지는 않다”며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번 재판과 관련해서는 “(평결이) 만장일치라 수용할 것인지, 배제하고 독자적 판단을 내세울 것인지 고심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선고를 연기한 배경에 대해서는 “(평결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는 참여재판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법관으로서의 기본 입장과 상충되는 점에 대해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 없는지 여유를 갖고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은 판사가 선고를 연기한 재판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민주당 의원)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안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후보를 비방한 데 대한 것이다. 안 교수는 당시 ‘보물 569-4호 안중근 의사 유묵 누가 훔쳐갔나? 1972년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소장, 그 이후 박근혜가 소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도난 문화재라고 한다’는 등의 글을 17차례 올렸다. 이날 재판은 시사인 기자 주진우(40)씨와 나꼼수 진행자 김어준(45)씨가 서울중앙지법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지 5일만에 열린 것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안 교수 재판은 28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30분까지 12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날 재판에서 안 교수는 최후진술을 통해 “지금 나는 평생의 일을 포기할 만큼 억울한 심정”이라며 울먹였다. 문재인 의원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 법정 앞에서 “안 시인은 우리나라 최고 국민시인으로 노벨문학상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런 욕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세계적인 웃음거리”라고 말했다.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다. 그러나 은 판사는 “공소 사실에 대한 배심원 판단과 재판부 판단이 달라 선고를 11월 7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법리와 팩트보다 감정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 붙이는 사건 종류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정치적 사건의 경우 이런 위험이 더 커진다. 국민참여재판에서 40여 회 이상 변론한 송종선 변호사는 “배심원을 선정할 때 정치적 성향이 어떤지를 물어볼 수는 없다”며 “배심원은 처음부터 약간 기울어진 상태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데 재판부가 배제 권한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9일 서울고등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문제점이 거론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새누리당) 의원은 “명예훼손은 법리가 어렵다. 전문 법조인도 어려운 것을 왜 국민참여재판을 하는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은 “명예훼손이 (법리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지적하신 부분은 상당히 유의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전주=권철암 기자, 박민제 기자

안도현 사건 배심원 무죄평결에 선고 연기한 전주지법 부장판사
"배심원 의견 최대한 존중하지만 재판부 판단과 달라 법률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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