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진검승부'는 일본에서 온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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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스포츠 경기를 언급할 때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가 ‘진검승부’다. “4강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다”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등처럼 사용된다. 정치와 관련한 이야기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국감에서 여야 저격수가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등이다.

 이처럼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일 때 ‘진검승부’란 말이 두루 쓰이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이 말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일본에서 건너온 특이한 말로 쓰인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검승부(眞劍勝負)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진짜 칼로 하는 승부’다. 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연습용 칼이 아니라 진짜 칼로 겨뤄 둘 중 하나가 죽는 대결을 말한다.

 ‘진검승부’는 일본말로는 ‘신켄쇼부(しんけんしょうぶ)’다. 의리에 죽고 사는 일본의 무사 정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제대로 된 사무라이(일본의 무사) 문화도 아니고 무사 신분을 잃은 낭인배나 조직 폭력단인 야쿠자 두목들이나 하는 행위다. 피를 보거나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난다.

 ‘진검승부’를 무슨 멋있는 말인 양 우리가 가져다 즐겨 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씁쓸한 용어다. ‘진검승부’는 조어 자체만 따져도 그 뜻이 ‘진짜 칼로 하는 이기고 짐’이어서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진짜 칼’은 ‘가짜 칼’에 대비되는 말로 굳이 ‘진짜 칼’이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또 진짜 칼로 하는 ‘승부’(이기고 짐)보다 진짜 칼로 맞붙는다는 의미에서 ‘진검대결’이란 말이 차라리 낫다.

  일본에서 온 용어라고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개념을 담는 용어라든가, 우리가 써 오던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일본식 한자어라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욱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별반 어울리지 않는 일본말을 쓸 이유는 없다.

 “4강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다”는 “4강을 놓고 결전(승부를 결정짓는 싸움)을 벌인다” “4강을 놓고 결판(최후의 한판)을 벌인다” 등이 적절한 표현이다. “4강을 놓고 마지막 한판을 겨룬다”고 해도 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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