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안 드는 전세' 대출 실효성 도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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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박근혜 대통령의 부동산 공약 사업들이 겉돌고 있다. ‘목돈 안 드는 전세’와 ‘행복주택’ 사업이다.

 2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민·기업·농협·신한·우리·하나 등 6개 시중은행은 지난달 관련 상품을 출시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다.

 목돈 안 드는 전세는 전세 보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렌트 푸어(Rent Poor)’ 지원 방안 중 하나로 지난 4월 1일 발표한 부동산 종합대책에서도 예고됐다. 전셋집을 얻으려 하지만 신용도가 낮아 보증금 대출이 어려운 세입자를 위해 집주인의 담보 능력을 빌리는 게 기본 원리다. 즉 대출이자를 세입자가 내는 조건으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본인의 주택담보대출로 조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전셋값을 5000만원 올리려고 하는데, 세입자가 갖고 있는 돈이 없는 상황이라면 목돈 안 드는 전세를 활용할 수 있다. 세입자는 집주인의 담보력을 빌리기 때문에 신용대출을 받을 때보다 싼 이자를 내면서 전셋값을 올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집주인 본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출에 대한 집주인들의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세제·금융 혜택 등 지원책을 내놨다. 대출금에 대한 이자 납입액에 대해 40%의 소득공제를 해주고, 대출금 규모에 비례해 재산세·종부세를 감면해 주겠다는 것이다. 또 해당 주택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금융회사 자율로 적용토록 하고, 60%까지로 제한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70%로 높여주기로 했다. 예컨대 5억원짜리 주택의 주인이 목돈 안 드는 전세를 이용하면 최대 3억5000만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시책에 호응한 집주인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공급은 적은데 수요는 넘치는 전세 시장 상황 때문에 이 제도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집주인이 굳이 본인 집으로 대출을 받아서까지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맺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쉽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인데 이에 동의할 집주인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이 제도를 이용했을 때 집주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매우 적기 때문에 시장이 반응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렌트푸어 등 서민 주거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복주택’도 첫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행복주택 사업은 철도부지 등 도심 내 국공유지를 활용해 신혼부부·저소득층용 주택을 짓는 것이다. 토지 매입비가 들지 않아 건설 비용이 싸다는 것을 정부가 장점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시범지구에서조차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공사비가 많이 들어 임대료를 낮추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박수현 민주당 의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자료를 인용해 “공사비가 민간 아파트 건축비에 비해 최대 4배까지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박근혜표’ 전세 대책들이 기대만큼 시장에서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전국 아파트 전셋값 오름세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1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주일 전보다 0.24% 올랐다. 61주 연속 오른 것이다. 2012년 말 가격과 비교하면 6.15% 상승했다. 특히 수도권 전셋값은 지난해 말에 비해 7.42% 올라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정부의 목표는 시장에 넘치는 전세 수요를 매매로 전환해 전세난을 완화하고 주택 매매가의 추가 하락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법 개정을 통한 취득세 인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찬반 및 적용 시점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전세난이 계속 이어지고 매매가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영식 감정원 주택동향부장은 “취득세 인하 시점을 언제부터 적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면서 주택 구입을 미루는 매수자들이 늘었고, 이에 따라 매매가 상승폭이 둔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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