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셰익스피어」의 희극에『한 여름밤의 꿈』이 있다. 한 여름 어느 날 밤중, 요정들에 둘러싸여 광란의 주연이 벌어진다. 깨고 나니 꿈이다. 그러나 깬 다음에 벌어진 일들도 꿈과 비슷했다는 줄거리다. 이런 한 여름의 꿈을 꾸는 게 바로 6월 24일이다. 영국에서 『한 여름날』(midsummer day)면 6월 24일을 가리킨다. 「미드서머·이브」는 그러니까 24일의 전야가 된다.
이날을 두고 광란의 시기라고도 한다. 한여름의 광란을 뜻하는 말로도 쓴다.
여름의 더위가 너무 심해지면 사람들이 미치광이처럼 되어버리기 쉽다는 데서 나온 말인가 보다. 「미드서머·문」(midsummer moon)이란 말도 있다. 낮에 더위를 잔뜩 먹고 난 다음, 밤에 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달에 홀려서 얼이 빠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게 도시 뭔가? 한 여름의 광란은 세상이 다 돌아버렸단 말인가?
「드라이든」의 시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영국식으로 따진다면 우리도 이런 광란의 시절에 접어든 셈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도 광란의 꿈을 꾸었다는 얘기는 없다.
영국과는 여름이 반 달 가량 차이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국에서는 성조기를 「dog days」라고 한다. 대충 7월 한 달과 8월 초순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영국에선 아무리 한여름의 더위라 하더라도 30도를 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우리 나라의 요새 날씨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가 견딜만한 더위라 여기고있는 정도를 영국사람들은 견디기 어려워한다. 역시 우리네만큼 참을성이 많은 백성도 드문 것 같다. 그런 영국인이 어떻게 「아프리카」나 인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는 역사가나 따질 문제이다. 하기야 우리도 한창 수은주가 오를 다음달부터는 혹은 더위 먹은 사람들의 광란에 관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또 너무나 광란적인 얘기들에 젖어서 웬만한 얘기에는 눈 끝 하나 까딱이지 않게 된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영국사람들보다 더위를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처럼 광란적인 일들도 곧잘 견딜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어제오늘에는 별로 눈을 휘둥그래 할만한 일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광란의 계절을 앞둔 고요일지도 혹은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만 이라도 우리는 초하의 태양을 마음껏 즐기면 될 것이다. 누군가가 한국판 『한 여름밤의 꿈』을 써 낼 때까지는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