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회장 "똑똑한 사람보다 지식 갈증 큰 사람 뽑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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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 국가에서 기업이 겪고 있는 문제다.” 24일 오전 7시20분.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 연회장을 메운 850여 명의 기업인이 일순 조용해졌다. 연단에 오른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그들에게 ‘동지’였다. 한국만 그런 줄 알았더니 GE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발명왕 에디슨이 세웠고, 1896년 다우존스지수가 생겼을 때 포함됐던 기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업도 다를 게 없었다. 이멀트 회장은 기업이 마주한 문제로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정한 시장경제 구축 등을 열거했다. “정부와 기업 간 마찰이 생기고, 신뢰 부족이 드러났다”고도 했다. 한국 기업인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딱 그 대목이다.

“성장, 모든 문제 해결 … 빨리 움직여야”

 이멀트 회장의 강연은 해법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 기대고 있던 허리를 연단 쪽을 향해 곧추세우는 참석자도 있었다. 이멀트 회장은 9·11 테러 4일 전 GE의 9대 회장이 돼 미 경제의 암흑기를 헤쳐왔다.

 그런 그가 꺼낸 답은 ‘성장’이었다. 그는 “세계가 기업인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성장이다. 재정·금융·공정성 등 기업에 닥친 모든 문제는 성장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장을 위한 지름길도 제시했다. 그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크고 느린 회사가 설 자리는 없다”고 단언했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업 문화는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라고 소개했다. 그 해답을 그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기업에서 찾았다. GE 임원들은 3∼4년 전부터 아마존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창업기업 인재들을 만나 이들에게 작은 기업의 노하우나 운영방식을 배워왔다. 그 결과 GE의 의사결정 과정이 간결해졌다. 본사 규모는 줄었다. 대신 세계 각지에 파견된 현지 리더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이멀트 회장은 “기업 전체 규모는 유지하되 본사는 세계 각지 파견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게 GE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권한의 위임’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믿고 맡길 인재의 확보와 육성이다. 이멀트 회장은 “GE가 찾는 인재는 유능한 인재가 아니라 ‘빠르게 학습하는’ 인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적을 불문하고 호기심이 많고 외부지향적이며 지식에 대한 갈증을 계속 느끼는 인재를 선발한다”고 덧붙였다. GE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매년 10억 달러(1조620억 여원)를 투자한다. 강성욱 GE코리아 사장은 GE의 기업문화를 ‘사람이 우선이고 전략은 그 다음’이라고 규정했다.

“언론에 기업 칭찬 기사 나오면 위기”

 과감한 결단도 강조했다. 이멀트 회장은 “우리는 핵심역량과 맞지 않는 사업 분야를 과감히 정리하고 그 수익을 가능성 있는 다른 사업부에 투자해 왔다”며 “그러지 않았으면 GE는 아직도 전구만 만드는 기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식별법에 대한 힌트도 줬다. 이멀트 회장은 “신문 등 언론에 기업에 대한 칭찬기사가 나오면 그것은 위기라는 증거다. 절대 자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도 대부분의 금융업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실적도 좋았다”고 강조했다.

 GE는 요즘 부쩍 한국과 가까워졌다. 한국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GE는 조선해양 분야 본부를 부산에 설립했다. 이멀트 회장은 “한국 기업 중에서는 경쟁자이자 파트너인 삼성의 리더십에 관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거대한 조직인데도 빠른 결단과 추진력, 세계 어디에든 나가서 이기겠다는 승부욕이 있어 늘 주시하고 있다”며 “상사가 얘기하면 부하직원이 무조건 따르는 문화도 독특하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인들은 해답의 실마리를 준 그에게 “당신은 어디서 경영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얻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이멀트 회장은 “리더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자극할 수 있는 멘토나 조언자를 곁에 두는 게 중요하다”며 “지난 10년간 3개월에 한번씩 뉴욕 근처에서 IBM,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존슨앤존슨, 펩시의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서로 질문하고 대화하는 자리에서 영감을 얻어왔다”고 말했다.

F-15SE기 엔진 공급 … 박 대통령 만나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이멀트 회장을 만났다. 박 대통령은 “한국의 인프라와 GE의 기술이 결합해 제3국에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멀트 회장은 “항공산업, 헬스케어, 산업인터넷, 첨단산업 분야 등에서 협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E는 차세대 전투기 후보 기종인 보잉의 F-15SE의 엔진을 만들고 있다. 그는 또 “인터넷 혁신센터를 한국에 설립하고 장기적으로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채윤경 기자

◆제프리 이멀트(57)

GE 회장이자 최고경영자. 미 다트머스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아 1982년 GE플라스틱에 입사했다. 1989년 GE가전 부사장으로 취임했고 1997년 의료기기업체인 GE메디컬시스템스의 사장으로 취임해 1년 만에 30억 달러이던 매출을 두 배 올리면서 주목받았다. 2001년 GE 회장으로 취임해 12년간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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