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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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런던에 처음간 미국기자가 영국인들에게 빈정대듯 물었다.『영국신문은 정부에 의해 전환 당하고 있는 모양이군. 워싱턴에서는 1주일에 한번씩은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이 있는데 왜 영국에서는 그런게 없는가?』영국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미 대통령은 1주에 한번씩이라고? 영국의 수상은 1주에 몇 번씩이나 평의원들한테 시달림을 받는데….』
영국에서는 중요한 문제의 일반공개는 원칙적으로 의회에의 보고가 있은 다음에 행해진다. 가령 히든 수상이 미국에서 닉슨을 만나고 돌아봤다고 치자. 런던 공항은 물론 기자와 카메라맨들에 의해 메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양 거두 회담의 결과가 밝혀지는 일은 거의 없다.
만일에 그런걸 묻겠다는 올챙이 기자가 있다면 히드는『그 문제는 노동당의 윌슨씨와 의회에서 토론하고 싶군. 난 지금 바로 의회에 갈 테니까 자네들도 알고싶으면 거기 와서 듣지』라고 답했을 것이다.
기자를 전환해서가 아니다. 의회에 보고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 의회정치의 나라 영국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독일 항복의 역사적인 발표도 처칠은 의회에서 먼저 했다. 그것도 의원들의 대 정부 질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했다.
아무리 중대한 뉴스라도 의회정치의 유명인 토론의 시간을 제쳐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의 기자회견은 따라서 의회에서의 토론과 보고가 끝난 다음에 있다. 기자회견은 그래서 국민에게나 신문에나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치성 신임내무부 장관은 12일 기자들 앞에서 무슨일엔지 화가 나서 한때는『앞으론 기자회견도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장관다운 체통을 잃을 만큼 흥분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겠거니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몹시 마음에 걸리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정부가 의회에서 정책보고를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거의 모든게 프레스·릴리스를 통해 국민에게 발표된다. 그것도 거의 전부가 사후 발표다. 기자들이 추측기사를 쓰게 되는 까닭도 이런데 있다.
국민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정부는 국민에게 모든 것을 알릴 의무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양자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오직 기자회견의 자리뿐이다.
영국에서처럼 의회가 이런 역할을 도맡는다면 굳이 기자회견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우리 나라에선 기자회견을 안 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귀를 틀어막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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