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 - '웃음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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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은(1933~) '웃음에 대하여' 부분

친구여 웃지 말자
아직까지는 굳센 슬픔이 우리 것이다
비바람 속에서 웃지 않듯이
캄캄한 밤길에서 웃지 않듯이
고비사막 헤매다가
설미치기 전에는 웃지 않듯이
오늘의 삶으로 웃지 말자
두 눈 브릅뜨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엄혹한 유신시절 사람들에게 웃음을 금지시킨 시인은 오늘 어떤 표정일까? 그 엄숙함으로 넘어온 세상의 파도가 있었겠지만 그로 인해 일그러진 얼굴은 없을까? 서로가 마음을 풀고 볼 때에야 비로소 각자의 삶의 뒤편에 어려 있는 삶의 파란만장에 악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에야 마침내 한 잎 은행잎이 세상을 밀어내며 속 이파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아침에 아름다운 풍경 하나면 아니 세상이 환해진다. '친구여 웃자'로 시작하는 시를 한번 쓰고 싶다.

강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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