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브로드웨이 뮤지컬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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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4일 저녁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라이브 음악이 아닌 녹음된 음악이 흘러나오는 유례 없는 진풍경이 벌어질지 모른다. 브로드웨이의 프로듀서.극장주 연합회와 뮤지션 노조 간의 재계약 협상이 계약 만료일을 코앞에 두고도 지지부진해 자칫하면 뮤지션이 파업을 일으킬 태세기 때문이다.

특히 뮤지션 노조가 파업하면 제작자들이 '버추얼 오케스트라'를 대신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협상은 점점 꼬이고 있다.

'버추얼 오케스트라(Virtual Orchestra)'란 현재까지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된 형태의 디지털 연주 방식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테이프에 한번 녹음시킨 후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틀어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의 개별 악기의 음색을 디지털화해 따로따로 녹음한 다음 이를 내보내는 방법이다. 간단한 컴퓨터 키보드 조작으로 박자와 완급을 조절할 수 있고, 심지어 악기의 편성까지도 바꿀 수 있다.

이미 뉴욕시티발레단 등 많은 공연에서 실제 연주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라이브 연주가 생명인 브로드웨이에서 본격적으로 도입을 시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고 매출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상품이 제작자들의 이윤추구를 위한 무기로 인식되면서 뮤지션들과는 적대적인 관계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뮤지션 노조는 라이브 음악이 갖는 고유성을 강조하면서 '버추얼 오케스트라' 시스템의 도입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버추얼 오케스트라'를 브로드웨이에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비인간적인 행태"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제작자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파업 때문에 쇼를 중단할 수는 없으며, 비용 면에서도 '버추얼 오케스트라'가 저렴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단 25명에게 매주 약 3만~4만달러가 지출되는 데 비해 '버추얼 오케스트라'는 최초 설치비용으로 4만~7만달러가 들고 이후엔 매주 단 1천5백달러로 운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버추얼 오케스트라'는 향후 뮤지션 노조와의 협상에서 제작자들이 우위를 선점하게 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세력 간의 알력 싸움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협상에서 관객들이 철저히 소외돼 있다는 점이다. 과연 관객들이 라이브 오케스트라 대신 엔지니어의 키조작을 보며 같은 크기의 감동을 맛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www.nyl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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