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작품 족집게처럼 콕! ‘선구안’의 귀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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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호 06면

진정한 유머는 자기비하에서 나온다. 이 말은 요즘 하정우가 톡톡히 써먹고 있다. 하정우는 17일 자신의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하대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초특급 스타 대열에 올라선 그가, 그런 자신을 실컷 비웃고, 까대고, 욕하고, 쥐어박고 싶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근데 그게 솔직하고 시원해 보인다. 그래서 같이 웃게 된다. 자신을 향해 그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처럼 일단 욕부터 시작하면서. “XX, 스타가 대체 뭔데?”

영화 ‘롤러코스터’로 감독 데뷔한 배우 하정우

대중스타가 갖는 위선과 위악의 경계를 그는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스타가 뭔데 그 난리들이냐고. 스타도 사람이고 스타도 당신들처럼 똑같은 일상을 갖고 있다고. 한마디로 별거 아니라고. 그리고 이 영화가 결코 대중스타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라고.

이 사회 속에서 방귀깨나 뀐다며 껍죽대고 나대는, 그러면서 늘 삐딱선 타려는 속물형 사회권력가 전체를 겨냥한 얘기라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면서 실컷 그들을 비웃어 주라고 그는 말한다. ‘롤러코스터’는 바로 그런 영화다.

하정우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정우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게는 참 복인데, 그 복은 어찌 보면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추격자’에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등등 그가 출연한 영화는 거의 전부 5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고 또 모으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하정우는 500만 이상이 들 영화를 잘 고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건 단순히 그가 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영화 전체를 구축할 줄 아는 작가적 역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와 얘기를 하다 보면 이 친구 만만치 않구나 하는 걸 느낄 때가 많다. 그는 이번 ‘롤러코스터’ 이후 곧바로 다른 연출작을 준비 중인데, 놀랍게도 현대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다. 하정우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원작과 같으면서도 아주 다른 영화가 될 겁니다. 소설은, 아무래도 소설이니까, 주인공 허삼관이 왜 피를 팔게 됐는가에 대한 행동 동기와 그에 대한 설명이 좀 불친절하게 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무래도 서브 텍스트가 필요해요. 영화는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얘기를 1945년에서 1990년대까지의 한국적 상황으로 바꿀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구축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배우 집어치우고 감독을 한다고 해도 아무도 얘기를 할 사람이 없지 않을까?

하정우는 정말 요즘, 일이 너무 많다. ‘롤러코스터’가 개봉된 만큼 그걸 알리느라 정신이 없고 스스럼없이 ‘베프(베스트 프렌드)’라 부르는 윤종빈 감독의 신작 ‘군도’에 출연하고 있는 만큼 그 마무리 작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고정 CF만도 몇 개나 된다. 읽어 달라는 시나리오는 키를 넘는다. 심심치 않게 그림 전시회 제안도 있다(다 아는 얘기지만 하정우는 그림도 그린다, 세상에!). 사람에게는 피크(peak)가 있는 법이고 하정우가 지금 그 절정의 시기다.

사람들이 하정우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가 꽃미남 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늘 수컷의 본능이 느껴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하정우의 멜로를 좋아한다. 그의 사랑은 여자의 가슴 속을 파고들기보다는 가슴 안으로 여자를 안는 방식이다. 열정적이고 전투적이다. 요즘엔 이런 남자 드물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하정우의 시대가 계속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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