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또 국정원 수사 갈등 … 팀장 업무서 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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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인 윤석열(53) 여주지청장이 담당 업무에서 배제(직무이전명령)됐다. 검찰 내부 보고체계를 무시한 채 수사 과정에서 새로 혐의가 드러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체포를 강행했다는 이유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18일 “윤 지청장이 상부 보고와 결재 절차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채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 및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한 뒤 역시 보고 없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법원에 접수시켰다”고 밝혔다. 이진한 2차장은 “이에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윤 지청장에게 구두로 수사팀 배제를 통보했으며 18일 공식적으로 배제시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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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길태기 대검 차장도 즉각 서울중앙지검에 이 사안에 대해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검찰 안팎에선 “국정원 사건을 놓고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간 내부 갈등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갈등의 1라운드는 지난 6월 수사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려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수사팀은 당시 원 전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고 주장했고 채동욱 전 총장도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반대하면서 사건 처리가 2주 넘게 지연됐다. 결국 선거법 위반은 적용하되 원 전 원장은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봉합됐다. 하지만 댓글 사건이 야권의 장회 집회 등 정치공세로 비화하자 청와대에서 검찰의 사건 처리에 불만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2라운드는 수사팀이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이었던 직원들 일부가 트위터에서 조직적으로 퍼나른 글 5만5000여 건을 확보한 게 단초가 됐다.

 이는 기존 댓글 건과는 별도의 혐의다.

 윤 지청장은 이번 주 초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구두 보고했다. 조 지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상대가 국정원인 만큼 구두보고로 그칠 일이 아니고 (대검·법무부 보고 등) 절차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윤 지청장은 “보고할 경우 법무부가 받아줄 리 없고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윤 지청장은 결국 지난 16일 별도의 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한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이 발부되자 수사팀은 17일 오전 7시 국정원 직원 4명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이 중 3명을 전격 체포한 뒤 이를 조 지검장과 대검 간부들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즉각 항의 공문을 보내왔다. 국정원직원법상 국정원 직원을 구속하려면 사전에 통보해야 한다. 윤 지청장이 내부 보고를 누락하고 법적인 하자까지 남긴 셈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사전통보는 법적인 의무고 급할 때는 영장 집행 직전에 전화만 해도 되는데 왜 안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오후 9시쯤 체포한 국정원 직원들을 모두 풀어줬다.

 검찰청법 4조에 따르면 개별 검사는 독자적으로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법 7조는 ‘검사는 소속 상급자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영장 청구는 부장검사 전결사항이지만 ‘주요 사건은 검사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이진한 2차장은 “보고체계를 무시하면 검사가 영장을 자기 멋대로 청구해 사람을 잡아오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특히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서는 보고 없이 영장을 청구하는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사팀은 18일 오전 이들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원세훈 전 원장과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정보국장 등 3명에 대한 공소장 추가 변경 요청서를 법원에 냈다. 이때도 별도의 보고는 없었다. 추가된 혐의는 대선 당시 트위터상에서 선거 관련 글을 올리거나 리트윗한 행위였다.

 검찰 내부 갈등의 불똥은 정치권으로 튀었다. 헌법재판소에서 국정감사 중이던 야당 법사위원들은 “전대미문의 정권의 수사 및 공판개입 사태를 규탄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전병헌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이 정권이 국정원을 살리기 위해 검찰 죽이기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21일로 예정된 서울고검·서울중앙지검에 대한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가영·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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