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참모 국정원장 인선 격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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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국정원장의 성격과 인선 기준을 놓고 2일 밤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 간에 열띤 토론이 펼쳐진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참모들이 盧대통령에게 "2.27 조각(組閣)발표 당시 국정원장을 실무형으로 임명한다고 한 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盧대통령은 "연륜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때로는 대통령의 뜻이라도 거스르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답했다는 전언이다.

그러자 참모들은 "그 분야는 대통령의 뜻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참모들은 "국정원장이야말로 대통령의 철학과 의중을 잘 아는 인사가 가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상당수 참모들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할 사람이라는 대통령의 원칙은 맞다"면서도 "그런 사람이 반드시 실무자 쪽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들로서는 아무래도 중량감이 있고 盧대통령과의 교감도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표시한 셈이다.

당초 새 국정원장 후보로는 일단 법조인을 택한다는 원칙이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맥락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과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송재헌(宋哉憲)일신법무법인 대표변호사와 이종왕(李鍾旺)김&장 변호사, 초대 민변회장을 지낸 고영구(高泳耉)변호사가 추천됐다.

특히 비서실 내부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까지 지낸 宋변호사가 유력하게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심야토론 자리에선 국정원장 인선의 기준을 놓고 토론을 거듭하느라 구체적인 사람 이름은 거론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모임에는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 등을 비롯한 수석비서관, 정찬용(鄭燦龍)인사보좌관 등이 참석했다는 전언이다. 회의는 결국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고 한다.

이에 따라 3일 차관급 인사 발표 때 신임 국정원장을 발표하기는 어렵게 됐으며, 이번 주 후반까지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역대 정권마다 최고 실세로 군림해왔던 국정원장 자리를 '평범한 자리'로 되돌리는 데 따른 진통의 현장이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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