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명예의 전당(28)-사이 영(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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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 1904년 5월 6일 루브 워델과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또 하나의 노히트 경기를 펼쳤다.이는 영의 두 번째 노히트 경기였는데 과히 걸작이었다.영은 애슬레틱스를 3 대 0으로 물리쳤는데 단 한 명의 주자도 1루에 내보내지 않은 퍼펙트 게임이었던 것이다.영은 얼마나 경기에 집중했던지 외야수인 칙 슈타알이 그에게 마지막 아웃을 잡은 공을 건네줄 때까지 퍼펙트 게임인지를 알지 못했다.

특히 영이 기록한 퍼펙트 게임은 1900년 이후에 기록된 최초의 퍼펙트 게임이었고 현대야구 이전이라 할 수 있는 1800년대의 기록을 포함하더라도 역사상 3번째의 기록이었다.물론 아메리칸리그 기록으로서도 영의 퍼펙트 게임이 역사상 최초였다.

후일 영은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것에 대해 "내가 빅리그에서 뛰었던 879경기 중에서 내 마음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기가 바로 보스턴에서의 그 경기였다."고 회고했다.

또한 1904년은 영에게 또 다른 기록에서도 기억할 만한 시즌이었다.야구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인 그것은 연속이닝 무안타 기록이었다.4월 26일 마지막 2이닝을 무안타로 막아낸 영은 다음 경기인 5월 1일 경기에서 구원으로 나와 7이닝을 던지며 무안타로 막아냈다.

그리고 역사적인 5월 6일 경기에서 영은 워델의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연출했다.이 때까지 영은 18이닝 동안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영은 5월 1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샘 크로포드에게 7회 1아웃 이후 안타를 허용함으로써 연속이닝 무안타 기록을 24.1이닝에서 마감했다.

영은 5번 30승을 기록했고 1891년부터 1899년까지 9년 연속 20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기록은 1900년에 19승을 기록함으로써 아깝게 중단되고 말았지만 1891년부터 1905년까지 기록했던 15년 연속 15승이라는 기록은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영의 존재 때문에 레드삭스는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이 될 수 있었고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를 보유한 팀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1903년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는 보스턴 필그림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신이었다)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간에 이루어졌다.이 월드시리즈는 또한 영에게도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였다.

1903년 10월 2일 필그림스의 홈구장인 헌팅턴 애비뉴 그라운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영은 선발로 나왔지만 9이닝 동안 12안타로 7실점하며 패전의 멍에를 썼다.웃긴 사실은 당시 필그림스가 월드시리즈 8차전 동안 기용한 투수가 3명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필그림스의 투수는 모두 6명이었지만 정규시즌에서 20승 이상을 거둔 영과 빌 딘닌,톰 허프스의 3명이 시리즈를 치룬 것이다.그것도 허프스는 월드시리즈 동안 겨우 2이닝만을 던져 필그림스에겐 딘닌과 영의 완투에 거의 의존했던 시리즈였다.

그러나 영의 실력은 5차전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뒤지고 있던 필그림스는 10월 8일 파이어리츠의 홈구장인 엑스퍼지션 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영의 완투에 힘입어 11 대 2의 대승을 거두며 2승 3패로 추격하기 시작했다.딘닌의 완투승으로 6차전을 이기며 시리즈 전적을 3승 3패로 만들고 난 이후 7차전에서 다시 영이 완투승을 기록하며 필그림스는 4승 3패로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앞서게 되었다.

당시 월드시리즈는 9전 5선승제로 치러졌기 때문에 필그림스는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1승이 더 필요했다.그리고 필그림스는 10월 14일 홈구장에서 열렸던 마지막 8차전에서 딘닌이 완봉승을 거두면서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승자로 탄생하였다.

영은 1901년부터 1908년까지 레드삭스에서 뛰면서 192승 112패를 기록했는데 레드삭스 선수로서 그 어떤 투수도 영의 다승 기록에 근접하지 못했다.

44세였던 1911년에 영은 내셔널리그 팀이었던 보스턴 브레이브스(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선수로서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뛰었다.

레드삭스는 후일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팔아치움으로써 1918년을 끝으로 월드시리즈 우승과 멀어졌던 것처럼 영을 레드삭스 구단이 영원히 잡지 못한 것은 역사상 최고의 투수를 자신들의 팀에서 은퇴하도록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덴튼 트루 영(Denton True Young)
1.1867년 3월 30일 오하이오주 길모어에서 출생
2.1890년부터 1911년까지 22년간 선수생활(1890년~1898년: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1899년~1900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01년~1908년:보스턴 레드삭스,1909년~1910년:클리블랜드 냅스,1911:클리블랜드 냅스,보스턴 브레이브스)
3.개인 통산 511승 316패 기록(역대 최다승 투수이자 최다패 투수)
4.815경기 선발 출장(역대 1위)
5.7356이닝 투구(역대 1위)
6.751경기 완투(역대 1위)
7.명예의 전당 헌액:1937년(BBWAA에 의해 선정됨)

배길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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