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상태 국내 대신 해외서 승부 … 올 미국법인 영업익 5000억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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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영 사장은 “현지 진출 금융사가 아닌 현지 금융사가 되는 게 핵심”이라며 “해외법인 직원 역시 현지 채용을 우선한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국내사업, 해외사업 나누지 마라.”

 최근 정태영(53)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공지했다. 내부에서부터 ‘국내사업’ ‘해외사업’이란 말을 없애자는 뜻이다. 그는 지난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카드 시장은 포화상태이고 상황은 점점 힘들어진다. 우리의 화두는 ‘해외 진출’일 수밖에 없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사실상 현대캐피탈에 한국 시장은 ‘주요 시장’ 중 하나일 뿐 더 이상 최대 시장이라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현대캐피탈의 해외진출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법인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영국법인도 설립 1년 만에 자산 1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올 들어 현재까지 독일·중국 등 진출 국가가 23개가 되면서 해외자산규모도 국내 자산규모를 넘어섰다. 미국법인이 지난해 미국에서 번 영업이익은 국내 시중 11개 은행의 해외 순이익의 35%를 넘는다. 여기에 창조경제 일환으로 ‘금융 한류’가 논의되면서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도 벤치마킹 사례로 현대캐피탈을 지목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라는 대기업의 제조 상품과 함께 금융업이 동반 진출해 현지 상황에 맞는 할부·리스 상품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에서다.

 - 결국 현대·기아차가 있었기에 유리했던 것 아닌가.

 “부인하진 않겠다. 할부금융이다 보니 은행·카드 등 한국의 타 금융사보다 이점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제품(자동차)이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해외 진출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미국법인의 영업이익 예상치가 5000억원인데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평가절하하지 말아 달라.”

 - 평가절하 받는다고 느끼나.

 “현대캐피탈 혼자 잘난 회사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철저한 준비 없인 성공할 수 없다. 미국법인의 경우 1989년 처음 금융사 설립하고 15년간 2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본 적이 없었다. 해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현대캐피탈의 경영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고 본다. 지금의 해외사업 성과는 현대캐피탈만의 문화와 전략이 아니라면 절대 없었을 결과다.”

 정 사장은 “해외법인에 웬만하면 한국 직원을 데려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대캐피탈식 현지화다. 해외법인 근무자수 총 1400여 명 중 한국 현대캐피탈 직원은 34명뿐이다. 직원 100명 중 2명 정도만 한국인인 셈이다. 유럽법인의 올해 신입직원 20명의 국적은 11개에 달한다. 그는 또 전 세계 어딜 가든 비슷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사무실에서부터 일체감을 강조한다. 내년부터는 전 세계 모든 직원이 한국과 같은 동일한 체계의 사번을 갖게 된다. 이러한 글로벌 전략은 파트너십을 맺은 세계적 기업 GE와 산탄데르의 영향이 크다. 현대캐피탈은 2004년 43%의 지분을 투자해 GE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유럽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와는 2010년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 GE와 산탄데르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10년간 GE와 교류하면서 선진 자금조달 기법과 위험관리 방법을 새로 배웠다. GE가 어디서든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원칙을 세우는 법을 가르쳐줬다면, 산탄데르는 지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현지화 전략을 알려줬다. 각국 사정에 맞게 상품을 다변화하고 마케팅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 진출한 국가별 특징이 있다면.

 “독일은 복잡한 조건일수록 좋아한다. 독일 자동차 할부에서 ‘거절’이란 단어가 없다. 사람마다 선수금·이자율이 다르게 100가지도 넘는 할부 금융 상품이 있다. 높은 선수금을 내라고 할지언정 딜러가 ‘NO’라고 거절하진 못하는 문화다. 미국·일본이 분단위로 결제 및 승인을 따진다면 중국은 하루가 넘게 걸려도 상관 없다.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고 생각보다 연체율도 낮다.”

 인터뷰 말미에 정 사장은 “현대캐피탈의 중장기 목표는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수시로 변하고 있어서다. 대신 “매년 3년치 앞만 보고 3년짜리 계획만 세운 뒤 수정해 나간다”고 답했다. 그는 “포화상태이고 규제도 심해진 한국 시장에서 중장기 목표를 고민하는 대신 당장 3년치 앞을 내다보며 비용은 줄이고 내공을 쌓는 ‘전투지향적’인 회사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세상 등지고 살다가 갑자기 뉴욕 가서 잘되는 사람 없듯 준비하고 또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글= 이지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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