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반론 기고

한국 전통문화와 1등 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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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한국 전통문화의 재발견에 대한 책을 쓴 사람으로서 배명복 논설위원의 4일자 ‘또 다른 일등 국가 한국?’ 칼럼에서 인용해준 것에 감사한다. 지적이 예리하고 다양한 접근법의 필요성을 재확인해준다는 차원에서 생산적인 토론이 됐다고 본다. 다만 칼럼에서 나온 지적과 관련해 저자로서 해명과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필자는 한국이 1등 국가로 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 주장은 대한민국이 1등 국가로 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이는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잘 계발해 1등 국가로 도약해 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또 1등 국가는 미국처럼 초강대국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선진 문명을 구가하는 모범 국가를 상정하며 이를 한국이 가야 할 길로 제안한 것이다. 특히 2013년 대한민국은 선진국 그룹과 개발도상국 그룹, 중국 중심의 대륙국가 그룹과 미국 중심의 해양국가 그룹의 중간자적인 위치에 처해 국제사회에 여러 가지 면에서 기여할 수 있는 특수 조건을 갖췄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조건은 형성됐지만 한국인이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위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문화결정론의 함정, 또는 인종주의나 민족주의로 빠지는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필자가 다룬 것은 한국 문화의 우월성이 아니라 특징·장점에 대해 제안한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우수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한국이 1등 국가가 된다는 생각은 사실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문화의 특징 중 장점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 단점을 잘 보완하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따로 논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화결정론과 관련해 남·북한 격차를 설명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다시 강조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문화가 우수하기 때문에 1등 국가가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국 문화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 성공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의 길을 가는 것이다. 한국 전통문화의 특징이 남한에서는 민주주의 발전, 시장경제 발전 등을 견인했지만 북한에서는 전체주의와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단기적 성공이 장기적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닌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이 절대적 차원에서 3류, 4류 국가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후퇴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사실이지만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중과 위상은 여전히 상당하다.

 한국 정치에 문제가 많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이 당면한 사회적 고민을 살펴볼 때 한국 정치는 비교적 우수하다. 지난 50년 동안 쉬지 않고 성장하고 사회적 변동을 겪은 조건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가 통합을 유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고 그것은 정치가 작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은 예산안 문제로 정부가 일시폐쇄되는 상황인데도 당리당략적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유럽의 정치는 무기력증에 빠져서 비판을 받고 있고 일본 정치는 세습주의의 문제가 심하다. 중국은 민주주의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독재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한국인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치가 진짜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필자가 책을 쓴 이유는 한국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경시하고 문화적 장점을 긍정적으로 살리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은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모델이 돼 있다. 한국이 선진국의 길을 가든, 개발도상국 위상에서 멈추거나 후진국으로 전락할지는 한국인이 결정하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모범적 선진 국가가 되지 못한다면 개도국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