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 등의 전면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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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2일 박내무는 기자 회견을 통해, 지금까지 각급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또는 공공단체직원의 임용, 기타 인·허가사무 및 해외여행 때 필수 요건으로 돼 오던 신원조사 업무를 대폭 간소화하고, 연좌제는 이를 철폐한다고 언명했다 한다. 박내무의 이러한 언명은 앞서 발표된 공화당의 당선공약과 유관한 것으로 보이나 어쨌든 그가 앞으로 신원조사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제까지의 신원조사 업무는 그 절차가 너무도 번잡했을 뿐 아니라, 동일인이 유사한 신청을 했을 경우에도 되풀이, 같은 조사를 반복해서 받도록 함으로써 식자층으로부터는 그것이 선량한 국민에게까지도 시간과 정력의 낭비를 강요케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음은 가리울 수 없는 사실이다.
신원조사 제도는 본래 64년 3월 10일에 공포된「보안업무규정」(대통령령)에 근거하고 있는데 동 규정 제 31조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보안을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 또는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해 실시하는 신원조사의 대상은 『공무원 임용 예정자 비밀취급 인가예정자 해외여행을 하고자 하는 자 각급 기관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공공단체직원의 임명에 있어서 정부의 승인이나 동의를 요하는 법인의 임원 기타 법령이 정하는 자』등 꽤 광범위한 것이다.
그런데 전기한 보안업무규정은 그 모법인 중앙정보법에 의한 신원조사권자인 중앙정보부장이 그에 관한 권한의 일부를 내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에게 위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박내무의 이번 언명은 내무부에 위양된 신원조사업무의 권한 일부를 제한적으로 유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의 신원조사권자인 중앙정보부장의이 문제에 대한 소견을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종래 일반인에 대한 신원조사업무를 담당했던 실무 부서인 내무부 당국자가 이른바 연좌제를 전폐하고 또 설사 자신에게 과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경미한 것일 경우에는 그 정상을 참작, 사회활동에 조금도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기대를 걸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른바 연좌제와 같은 전근대적 제도는 마땅히 없어져야 함이 당연하고 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성실성·신뢰성의 조사 같은 것은 과거행적보다도 현재 및 장래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더욱 중요시돼야 함이 원칙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무부가 해방 후 혼란시기 및 6·25 당시 북괴의 위압에 못 이겨 피동적으로 부동한 자 구명책 또는 주민의 추천에 의해 부득이 북괴에 동조한 자 북괴에 대한 가벼운 동조 행위 전향하거나 수복 후 자수하고 반공대열에 참여, 지금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기로 한다고 한 것 등도 같은 뜻에서 타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북괴의 끊임없는 적화통일공세가 누그러질 기미가 없는 현실 하에서 국가 요직에 취임할 자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 또는 신뢰성 등을 보다 세밀하게 조사, 평가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는 것은 십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현행 국가 공무원 법 등에 규정된 결격사유와 법적으로 모순이 없도록 법체계상의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금치산자·파산이 선고된 자·자격정지 처분기간 중인 자 등 법에 의해 명백히 공무원 등 특정직위에의 임용이 금지된 결격 사유자를 제외하고서 본인에게 아무런 전과가 없는 자 까지도 종래와 같이 객관성이 희박한 신원조사 결과만을 가지고 그 공직에의 임용과 민원사항의 인·허가가 거부되거나 또는 시행의 자유 등이 차별적으로 제한을 받는 일이 있다면 이는 적어도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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