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강압외교에 밀린 ‘2010년 굴욕’ 이후 방위 새 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해병대와 일본 자위대가 지난 9일 합동으로 미 캘리포니아주 샌클레멘테섬 탈환 훈련을 하고 있다. [로이터]
이명찬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을 비롯해 ‘보통 국가화’를 집중 연구해 온 지일파 학자. 게이오(慶應)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고려대를 거쳐 2008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이 주변국을 긴장시킨다. 집단적자위권은 일본과 이해관계가 긴밀한 국가가 공격받으면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쉽게 말해 제3국을 군사적으로 도울 권리다. 그런데 일본은 ‘헌법엔 집단적자위권이 규정돼 있지만 이를 행사할 수 없다’는 해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취임 이후 개헌이나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공격권을 가지려 하고 있다. 왜 그럴까. 동북아역사재단의 이명찬(53·사진) 연구위원에게 들어봤다.

-일본은 왜 집단적자위권에 집착하나.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중국에 내준 2010년이 전환점이었다. 그해 9월 중국 어선이 일본 해경 순시선과 충돌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고 일본인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중국의 강압 외교에 밀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당시 충격을 받은 일본은 그동안 억제해 온 군사력 활용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방위정책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집단적자위권은 그러면 중국을 겨냥한 것인가.
“미국이 1990년 1차 걸프전 당시 일본에 파병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헌법 위반이라며 거절했다. 이를 계기로 78년 만들어진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97년 1차 개정됐고, 99년엔 이를 뒷받침하는 ‘주변사태법’이 제정됐다. 한반도와 대만에서 일이 발생하면 자위대가 미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미국이 왜 최근 집단적자위권을 환영하나.
“새로울 게 없는 말이다. 미국은 1945년 일본 점령 뒤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을 강제했다. 그러다 6·25전쟁이 터지자 헌법 발효 3년 만에 개헌을 해 군대를 창설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자기 필요에 따라 일본의 무장을 원했다. 이번에도 집단적자위권은 미국과 일본 내 보수 정치권의 필요와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단순히 울고 싶은 일본의 뺨을 미국이 때려준 게 아니다.”

일본의 국가 노선은 ‘평화 국가’에서 ‘통상(通商) 국가’를 거쳐 ‘보통 국가’로 변해가고 있다. 평화 국가는 평화헌법에 따라 군사력 보유를 금하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체제다. 그러다 6·25전쟁 중이던 51년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되면서 54년 자위대가 창설됐지만 일본은 ‘경제에만 전념하는 통상 국가’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78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제정되고 97년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1차 개정되면서 ‘군사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 국가로 다가섰다. 이제 헌법 해석 변경에 성공해 집단적자위권 행사가 인정되면 확고한 보통 국가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보통 국가화는 군국주의화로 이어지나.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미·일 동맹이 유지되는 한 핵무기를 갖는 권력 국가로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미·일 동맹에 따르면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지켜주는 대가로 일본은 미군에 기지를 제공할 뿐 미국을 지켜줄 의무는 없다. 그러나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자위권 행사가 가능하게 되면 일본도 미국을 지켜줄 수 있는 쌍무적 동맹관계로 발전한다. 미국이 환영 의사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일본의 영향력도 커진다.”

-일본이 동중국해에서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곳에서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면 1차적으론 중·일 양자의 문제다. 미국이 미·일 안보조약에 따라 참전해도 한국은 어떻게든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도 낮다. 다만 미국의 개입 요구를 거절하면 이후 한반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가 난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일본이 집단적자위권을 내세워 한반도 분쟁에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은.
“그렇게 하기 전에 일본은 기준을 만들고 전제조건도 마련할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반대하면 일본은 절대 한반도에 진주할 수 없을 것이다.”

-집단적자위권은 우리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 것인가.
“여러 측면이 있다.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뿐 아니라 주일미군도 참전한다. 주일미군은 주한미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맡는다. 주일미군이 출동할 때 일본 자위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이 구축한 후방기지, 즉 주일미군 기지엔 2차대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국방예산으로 대체할 수 없다. 북한의 도발 시 현실적으로 자위대를 미군의 후방기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한다면 주한미군만으론 어림도 없다.”

-한국에 양날의 칼 같은데.
“그렇다. 모든 국가의 군대는 잠재적 흉기다. 독일은 개헌을 32회나 하면서 무장병력을 해외에 파병하고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라는 틀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웃 나라들이 안심할 수 있다.”

-그래도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걱정된다.
“일본의 국가 성격이 평화 국가, 통상 국가를 넘어 보통 국가로 진행 중이지만 권력 국가(군사대국화)로 가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도 일본에선 평화헌법 체계를 유지하려는 여론이 강하다. 무엇보다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이 유지되는 한 군국주의화는 불가능하다. 일본 국내적으로도 개헌은커녕 헌법 해석 변경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본엔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전엔 미국이 참전을 요청하면 평화헌법을 핑계로 댈 수 있었다.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치르는 전쟁에 말려드는 것을 우려해 참전을 최대한 피했다. 그런데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그런 보호막이 없어지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투명하게 추진하라’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데 너무 무르지 않나.
“정답에 가까운 대응을 하고 있다. 벌써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구체적 내용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섣불리 앞서가면 일본의 우익에 힘만 실어줄 수 있다. 적극 반대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일본이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존중해 위안부 같은 과거사를 깨끗이 정리하고 독도 문제에 현명하게 나온다면 이 문제를 묵인하는 카드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은데.
“중국 봉쇄만 미국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니다. 자국 이익만 생각해 일본만 편드는 인상을 주면 미국에도 도움이 안 된다. 역내 국가들의 과거사를 잘 조율해 일본의 바람직한 태도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그게 강대국의 책임이다.”

-무엇이 균형 잡힌 시각인가.
“일본의 모든 행동을 과거사와 연결하는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사는 시간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안보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집단적자위권은 안보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적절한 분리가 필요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단선적으로 보면 오히려 위험하다. 냉정하게 이해득실을 정확히 따져야 한다.”

중앙선데이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관련기사
▶ 이지스함 6척, 공중급유기 4대…日자위대 수준 '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