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의 그윽한 품도··명동화랑서 「벼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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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비의 문방구 가운데 벼루는 가장 기품을 보이는 물건이다. 붓과 먹이 한갓 소모품에 불과한데 비하여 벼루는 연륜을 쌓을수록 소중한 것이 된다. 옛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벼루를 얼마만큼 소중하고 값진 것으로 여겼는가 하는 것은 그것이 부장품의 중요한 품목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도 알만하다. 즉 선비가 세상을 떠나면 장사지낼 때 반드시 그의 머리맡에 벼루를 넣었던 것이다.
명동화랑이 마련한 벼루 전은 그런 선비다운 품도를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벼루는 지금 서구적인 필기도구에 밀려서 극히 한정된 사람들이 쓰는데 불과하지만,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가정이든 벼루 없는 집이 없었다.
요즘에는 국내에서 벼루가 생산되긴 하나 역시 수요가 아주 적은 까닭에 주목할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벼루전의 출품은 요즘 제작된 것이 아니요, 전세품이거나 혹은 출토품 등 옛 유물에 한하여 1백20점. 출품자는 대개 아직도 벼루를 쓰는 학계인사나 혹은 고 미술품 애호가 등 30명에 달한다.
옛 문헌을 보면 벼루의 명품이야기가 적잖게 기록돼있다. 또 중국 일본에서 이에 대한 수집 열과 감식안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에서 이 방면의 안목은 아직 그다지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벼루 전에는 재래 한국제품인 해동연 비롯하여 중국 및 일본 것을 비교해 보았고, 부장품으로서 출토된 것도 곁들여 놓았다. 개개의 벼루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시대와 향토적 의장이 어렴풋이 가름되고 한국 선비의 정갈한 기품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12일∼17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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