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김찬삼 여행기 「핀란드」에서 제2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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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국토의 70%가 숲으로 덮여있는데다가 아름다운 호수가 수없이 많기 때문인지 자연의 나라로 느껴졌으나 서울「헬싱키」에 이르니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첫 인상이 소련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분위기 같았다.
마침 영국여왕「엘리자베드」2세가 예방하고 있어서 「유니언·재크」기와「핀란드」국기가 나부끼고 있으며 영국일색인 듯 거리에는 영국상품이 많이 보였다. 분열식이 벌어지는 등 거리는 온통 축제기분으로 들떠있다. 「플래카드」에는 크게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영국에서 왔노라』란 글이 써있는데 이 두 나라의 우호관계는 매우 깊은 듯이 보였다.
이 수도에선 또 국제박람회가 벌어지고 있어서 외국사람들도 많이 와있어 국제도시다운 분위기다. 외국여성들도 많이 와있지만 유독 눈을 끄는 것은 이 나라의 늘씬한 현대여성들의 몸맵시이다. 그녀들의 눈은 저 호수의 물빛깔처럼 맑고 얼굴은 백은처럼 희멀쑥하다. 그리고 딴 「유럽」여성과는 달리 그녀들의 정신의 어떤 심연속에는 강렬한 삶의 의욕도 커 보이려니와 「시벨리우스」의 저항의 음악처럼 심화되고 승화된 아름다운 민족정신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성형에 있어서 「스페인」여성이 「카르멘」형, 「노르웨이」여성이 「바이킹」형이나 「노라」형이라고 한다면 「핀란드」여성은 저항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감정적인 저항이 아니라 이성적인 저항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지 모른다.
어쨌든 이 나라의 여성 특히 수도에서 보는 현대 여성에선 사치와 허영을 꿈꾸는 눈빛이 아니라 저항의 화신으로서의 새로운 또 하나의 여성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여성이 감성적인데 비하여 이 나라 여성에는 독일여성 못지 않은 이성적인 면이 많이 깃들여 있다는 것은 특이한 것이 아닐까. 이런 관찰은 여기 머무르면서 많은 지성여성들과 말을 주고 받으면서 느낀 것인데 특히 여성들의 문화에 대한 탐구욕은 매우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여성이「핸드백」에 값비싼 향수나 화장품을 넣고 다닌다면 이 나라 여성은 책 한 권을 넣을 만큼 향학열이 커 보인다.
「헬싱키」에 사는 어떤 여성의 환대를 받았다. 그녀는 맥주를 내게도 자꾸만 권하며 자기도 마시는 바람에 서로 거나하게 취했다. 이지적으로 보이던 그녀도 술기운 때문인지 흥분하며 억양을 약간 높였다. 어느 나라를 찾아가도 그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건 같은 것을 묻곤 했듯이 이 여성에게『당신의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소개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훌륭한 일이 너무나 많죠. 우선 2차대전때 소련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는데 8년 동안에 그 많은 배상금을 갚으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2년 동안을 단축시켜 6년 동안에 모두 지불했답니다.「라인」강의 기적을 흔히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세기의 기적이 아닐까요』하며 열을 뿜었다. 그러면서 내 손목을 덥석 쥐었다. 갸륵하고 자비스럽게 생긴 이 「핀란드」여성에겐 이렇듯 멋진 또 하나의 동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것이 곧「핀란드」의 원동력이며 이 나라 여성의 최대의 매력이 아닐까.
이 여성과 헤어진 뒤 국제박람회를 보기로 했다. 여기엔 여러 나라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상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위성국가에서는 기계류, 그리고 소련에서는 「세단」차를 선전하고 있는데 그 선전문이『당신도 안락한 자동차를 가질 수 있읍니다』하는 말이었다. 소련에서는 농기구라면 모르겠는데 자동차 선전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동독에서는 교환전화, 영국은 해양관계의 제품, 「노르웨이」는 어선관계의 제품들이고 서독은 전자기계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훌륭한 물건일수록 지나친 선전은 하지 않고 있었다. 또 「케냐」는 「코피」몇 가마를 놓고, 크게 선전을 하고「불가리아」는 포도주를 선전하며 시음하라고 하기에 주는 대로 자꾸 마시어 그만 취해버렸다. 「헬싱키」거리에는 독일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독일로 가기 위하여 열차를 탔는데, 어떤 시골역에 닿기 전에 그 지방 시인의 시 한 귀절을 열차의 직원이 감정을 넣어 유창하게 「핀란드」말로 읊어 주고는 다시 영어로 옮겨주었다. 이 나라엔 「시벨리우스」의 음악과 함께 영국 못지 않은 문학열이 크며 자기나라 문학가들을 얼마나 아끼고 세계에 선전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다음은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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