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심장병 아이들의 수호천사, 그 따뜻한 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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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한 교수(가운데)가 지난달 23일 심장병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회복 중인 몽골 아이들과 함께 섰다. [사진 서울대병원]

지난달 23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소아병동. 몽골에서 온 세 살바기 친크허슬렌과 푸어수렌이 활짝 웃으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가슴엔 아직 아물지 않은 심장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앞서 5일 입국 당시 선천성 심장병인 ‘팔로4징증’으로 온몸이 잿빛이었던 아이들의 얼굴엔 붉은 생기가 돌았다. 팔로4징증은 심장에서 폐로 가는 동맥이 막혀 호흡에 어려움을 겪는 병이다.

 소아병동 5층에는 이런 선천성 심장병으로 김웅한(50·소아흉부외과) 교수에게 수술을 받은 몽골 어린이 4명이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김 교수는 “선천성 심장병은 제때 수술만 받으면 완쾌될 수 있는 병”이라며 “보름 만에 혈색을 찾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987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김 교수는 흉부외과 전문의를 마치고 95년 처음 심장수술을 집도한 이래 지난 3월 27일까지 4000건의 소아 심장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 교수가 국내 소아 심장수술에서 독보적이라고 인정받는 이유다.

 경기도 부천 세종병원에 근무하던 99년, 그는 ‘의료 봉사’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 NGO와 함께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에 있는 하얼빈 어린이 병원에 의료 봉사를 위해 방문하면서다. 당시 하얼빈 어린이 병원에는 흉부외과가 없어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을 눈으로 본 김 교수는 이듬해 하얼빈 시립병원, 하얼빈 의과대학 등 하얼빈 소재 4개 병원 의사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연수를 시켰다.

 2003년 서울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 교수는 2006년 만들어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지원을 받아 해외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무료 수술을 시작했다. 2009년부터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고려인들을 무료로 수술하는 등 지난달까지 59명의 소아 심장수술을 마쳤다. 국내로 초대해 수술한 몽골·이집트·캄보디아 아이들까지 더하면 92명에 이른다. 그의 노력으로 서울대병원에서 1년간 연수한 우즈베키스탄 의사 나리문(30)이 2012년 그 나라 의사 최초로 자국 심장병 어린이 수술에 성공하기도 했다.

 해외 어린이 심장수술은 김 교수에겐 봉사활동이었지만 현지에선 우리 의료 수준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지난 6월에는 ‘몽골의 유재석’으로 통하는 유명 개그맨 바야르 막나이(37)가 생후 1개월된 아들의 심장수술을 위해 자비로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김 교수는 이달 하얼빈 시장으로부터 특별상(의료부문)을 받을 예정이다. 외국인으로선 유일한 수상자다. 그는 “해외 어린이들을 완쾌된 상태로 사회에 복귀시키는 보람과 더불어 현지 의료 수준을 높여주면서 양국간 신뢰의 기초를 쌓는 작업도 의미있다” 고 말했다.

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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