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검찰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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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3년 9월 14일자 30면>
박근혜정부, 검찰 독립 지킬 의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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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독립은 한국 사회에서 흔들릴 수 없는 가치다. 그 점에서 검찰조직의 수장인 검찰총장의 진퇴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현 정부가 과연 검찰 독립을 보장할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어제 “총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며 임기 중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양심적인 직무 수행을 어렵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채 총장의 사의 표명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감찰 지시에 따른 것이다. 현직 총장에 대한 법무장관의 감찰 지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婚外) 아들’ 의혹을 제기한 이후 거듭된 논란에 대해 ‘총장이 책임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어제 황 장관은 감찰을 지시하면서 “중요 사정기관 책임자에 관한 도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검찰 명예와 국민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속히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키고 검찰 조직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찰 지시는 법무부 훈령에 따른 것으로 형식상으론 문제가 없다. 그러나 채 총장은 문제의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조속히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의혹에 대해 법적 규명 절차를 밟아가는 시점에서 황 장관은 무엇을 위해 ‘감찰 지시’ 카드를 꺼내든 것인가.

 물론 채 총장의 혼외 아들이 실제 존재한다면, 그가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해왔다면 계속 공직에 앉을 자격이 없다. 또 법무부가 진위를 확인했다면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할 문제다. 그런 과정과 절차 없이 이례적으로 공개 감찰 지시란 극약처방을 한 것은 검찰 명예와 국민 신뢰를 오히려 해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채 총장 의혹이 ‘국정원 댓글 수사에 대한 반격 차원’이란 추측이 대두되고 황 장관 중심의 공안부 라인과 채 총장 중심의 특수부 라인 간에 반목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찰 지시와 총장 사퇴는 조직 불안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총장을 밀어낸 것으로 비침으로써 검찰 조직, 나아가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당장 야당에서 “청와대·국정원의 검찰 흔들기”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검찰 내부에선 “정권의 입맛에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결국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수사의 공정성을 흩트리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국민으로부터 나온 검찰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드리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약속을 어떻게 이행하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만약 ‘수사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흔들 수 있다’는 도식이 자리 잡는다면 그건 검찰권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다.

한겨레 <2013년 9월 14일자 23면>
검찰총장을 ‘권-언 공작’으로 쫓아내는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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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은 애초부터 권력과 <조선일보>가 손잡고 벌인 ‘채동욱 몰아내기 작전’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언론이 손에 넣기 힘든 은밀한 사생활 정보가 마구 흘러나온 것도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의 총지휘자는 채동욱 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청와대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그리고 청와대는 기어이 채 총장을 자리에서 쫓아냈다.

 권력과 조선일보가 합작한 검찰총장 축출 1차 작전은 실패했다. 채 총장이 유전자 검사에 응한다고 나옴으로써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됐다. 조선일보의 완패가 점차 분명해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채 총장을 쫓아내기로 마음먹은 권력은 집요했다.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실시라는 전무후무한 ‘2차 작전’에 나섬으로써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이 채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등 청와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잔인하고 독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법률에 명시된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 등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이 그어놓은 선에서 반 발짝이라도 발을 내미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오기와 성깔이 번뜩인다. 채 총장 체제의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을 박 대통령은 참을 수 없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상식과 순리마저도 포기했다. 이번 사안의 경우 유전자 검사 결과라도 기다리는 것이 상식이다. 도대체 이 정권이 언제부터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자를 갈아치웠던가. 장관 임명 과정에서 확인된 도덕성 흠집투성이 인물들에 대해 박 대통령이 보인 태도를 되돌아보면 검찰총장에 대한 전격적인 감찰 조사는 쓴웃음을 자아내게 할 뿐이다. 논리도 일관성도 없이 오직 검찰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겠다는 노골적이고 폭압적인 힘의 논리만이 횡행할 뿐이다.

 사실 진상규명이 정작 필요한 것은 검찰총장에 대한 근거 없는 사생활 정보를 조선일보에 흘려 공직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국가기관이 어디인지를 밝히는 일이다. 물증이 없어서 그렇지 대다수 국민은 이번 사건에 국정원이 깊숙이 개입해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청와대가 ‘조속히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켜야 할’ 대상은 채 총장의 혼외 아들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국정원의 일탈행위 여부다. 그래서 국정원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든가 아니면 국정원 소행임을 밝혀 엄중한 책임을 물었어야 옳다. 박 대통령이 이런 ‘공작정치’는 방조하면서 국정원 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그 말에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오는 16일 여야 대표들과 만나 정국 정상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만남이 결실을 맺으려면 국정원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진실한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총장 축출 사태에서 다시금 확인된 박 대통령의 오만한 국정운영 태도를 보면 그런 기대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 아닌가 싶다. 나라를 점점 더 과거의 어두운 터널로 후진시키는 박 대통령의 행태가 참으로 우려스럽다.

논리 vs 논리
중앙도 한겨레도 … ‘채동욱 사태’ 뒤 검찰 독립 회의적

지난달 6일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논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논란 등으로 정국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보도는 정국에 큰 파장을 몰고 왔던 이슈들을 단박에 갈아치웠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물타기용 보도’라고도 하고, 권력과 언론의 합동작전으로 권력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채동욱 검찰총장을 흔들기 위한 작전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번 사건에 권력이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입장이다. 민변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와 관련해 “검찰 조직을 흔들어 다시금 권력의 입맛에 맞는 정치검찰로 길들이려는 시도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결과적으로 검찰 출신 장관이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검찰총장 임기제를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검찰은 이제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성의 문제이지 검찰 독립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입장이 그것이다.

 한겨레는 이번 사건을 권력과 조선일보가 합작한 검찰총장 축출 작전이라고 단적으로 규정한다. 이는 민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언론이 손에 넣기 힘든 은밀한 사생활 정보가 마구 흘러나온 것도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의 총지휘자는 채동욱 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청와대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라는 것이 이번 사태를 보는 한겨레의 입장이다. “채 총장 체제의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을 박 대통령은 참을 수 없었던 셈이다”라는 한겨레의 입장은 사건 발단을 권력 중심부로 돌리면서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켜야 할 대상은 채 총장의 혼외아들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국정원의 일탈행위 여부라고 못 박는다.

 중앙일보 역시 ‘현직 총장에 대한 법무장관의 감찰 지시는 사상 초유의 일’이며, ‘법무부가 진위를 확인했다면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할 문제다. 그런 과정과 절차 없이 이례적으로 공개 감찰 지시라는 극약처방을 한 것은 검찰 명예와 국민 신뢰를 오히려 해치는 것’이라며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가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한다. 또 중앙일보는 법무장관의 감찰 지시와 총장 사퇴로 조직 불안이 증폭될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총장을 밀어낸 것으로 비침으로써 검찰 조직, 나아가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중앙일보는 우려를 표명한다.

 중앙일보가 절차와 과정을 중시해 감찰 지시의 정당성 문제를 따지고 그 부작용을 지적했다면, 한겨레는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의도나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건을 도덕성의 문제로 보면서도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검찰총장을 밀어낸 것으로 비침으로써 검찰 조직, 나아가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당장 야당에서 청와대·국정원의 검찰 흔들기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검찰 내부에선 정권의 입맛에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야당과 검찰 내부의 여론이 청와대의 ‘검찰 흔들기’로 비춰지고 있다고 중앙일보는 말한다. 결국 중앙일보는 “국민으로부터 나온 검찰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드리겠다”고 다짐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언급하며 검찰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겨레는 정치적 상황 분석에 주력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중앙일보가 전개되고 있는 사실에 집중해 의견을 밝히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겨레는 “채 총장 체제의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을 박 대통령은 참을 수 없었던 셈”이라는 표현이 그것, 다시 말해 한겨레는 이번 사건의 원인을 박근혜정부와 검찰 간의 힘겨루기로 분석하면서 이번 사건을 단적으로 ‘공작정치’로 규정한다. 당연히 한겨레의 입장은 국정원이 개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일보가 검찰의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면 한겨레는 국정원의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김보일 배문고 교사

▶다음 주 논점 기초연금 논란 10월 15일자에는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 수정안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안광복 중동고 교사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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