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테러조직 소탕 주말 번개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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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5일 새벽(현지시간) 소말리아 남쪽의 작은 항구도시 바라웨. 동이 트기 직전 바다 쪽에서 한 무리의 무장군인이 나타나 해변에 위치한 2층 빌라를 급습했다. 곧이어 공격하는 쪽과 공격받는 쪽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고, 전투 지원 헬기까지 동원된 교전은 한 시간이나 지속됐다. 공격자는 미 해군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이었다. 공격을 받은 곳은 2주 전 67명의 사망자를 낸 케냐 쇼핑몰 테러를 일으킨 소말리아 내 이슬람 반군 알샤바브의 근거지였다.

 #비슷한 시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거리.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하던 나지흐 압둘 하메드 알 루카이(49)는 갑자기 들이닥친 3대의 차량에 에워싸였다. 놀란 알 루카이의 차 유리문을 부순 무장세력은 삽시간에 그를 끌고 사라졌다. 공격자는 미 연방수사국(FBI)과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미군이었다. 체포된 알 루카이는 1998년 동아프리카 주재 미국대사관 테러를 주도했던 알카에다의 고위 인사였다.

 미국이 연방정부가 셧다운(폐쇄)된 상황에서 두 건의 대테러작전을 벌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토요일 새벽 소말리아와 리비아에서 벌어진 군사작전이 겹친 건 우연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리비아는 카다피가 사라진 뒤 어수선한 정국 속에 테러집단들이 몰려들고 있고,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테러집단의 온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었다. 조지 리틀 미 국방부 대변인은 5일 밤 긴급 브리핑에서 소말리아 바라웨에서 이뤄진 군사작전에 대해 “미군이 알샤바브 테러리스트의 근거지를 목표로 대테러작전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 측은 미군 사망자나 부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NYT는 작전 내용을 잘 아는 미 당국자가 처음엔 알샤바브 지도자를 체포했다고 설명했으나 나중에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알샤바브의 대변인인 압디아시스 아부 무사브는 “보트를 타고 나타난 서양인들이 바라웨 해변에 있는 우리 기지를 급습했다”며 “교전 끝에 동지 한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알샤바브 측은 처음에 공격자들을 영국과 터키의 특수부대라고 주장했었다. 알샤바브는 ‘청년’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2006년부터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급격히 성장한 테러세력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당국자는 소말리아 작전의 배경과 관련해 “알샤바브가 케냐 쇼핑몰 테러의 경험을 살려 미국 땅에서도 비슷한 테러를 기획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며 “12명의 알샤바브 인사가 해외로 출발하기 전 모여 있던 때를 공격 시점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리비아에서 벌어진 알 루카이 체포작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사전 재가까지 받았다고 미 당국자는 밝혔다. 미 정부는 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200여 명이 숨진 뒤 용의자로 알 루카이를 지목해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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