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組閣] 소수파 부상…파워그룹 교체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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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정부의 조각 내용은 우리 사회의 파워그룹이 실질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특히 사회.문화 쪽 장관의 인선은 말 그대로 파격이다.

문화의 창의성.다양성에 걸림돌로 지목돼 온 문화관광부에 '피해자'였던 영화감독을 앉혔다. 역시 지방자치에 간섭.개입해 온 행자부에는 직선의 군수 출신을 보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나친 파격 인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으나 내 인사가 파격적인 게 아니라 그것을 파격적으로 보는 시각이 타성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변화가 필요한 곳엔 변화를 추동해 나갈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는 게 盧대통령의 논리였다.

이번 인사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 카드는 기존 법조계에서는 소수파였던 '여성' '민변 부회장 출신'에 '40대'라는 세가지 파격 요소가 겹쳐 盧대통령의 강력한 검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盧대통령은 "내가 (검찰의)서열주의를 존중할 의무는 없다"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 달라"는 말로 검찰 내부 반발 가능성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중심 세력의 성격이 관청 사무실에서 현장으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보수에서 진보로, 5060에서 3040으로 급변해나갈 것임을 예고한다.

이날 선보인 새 정부 장관들의 면면은 盧대통령이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도 보여줬다. 우선 '견제와 균형'이 국정 기조의 골격임을 알 수 있다.

盧대통령은 장관 인선 배경을 설명하면서 '개혁 대통령에 안정 총리, 개혁 장관에 안정 차관의 구상'임을 거듭 강조했다.

盧대통령이 고건(高建)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혹시 내가 급하게 나가면 高총리가 조절해달라"고 당부한 대목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盧대통령은 또 "高총리가 장관들의 시어머니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내각 내에서도 어느 정도의 견제와 균형을 갖추려고 애쓴 흔적이 있다.

경제는 안정을 택했다. 盧대통령은 "내가 지금껏 봐온 가장 유능한 공무원"이라고 했던 김진표(金振杓)국무조정실장과 박봉흠(朴奉欽)기획예산처 차관을 경제 운용의 사령탑인 경제부총리와 기획예산처 장관에 각각 발탁했다.

당초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가닥을 잡았던 김진표 부총리는 개혁적 학자군으로부터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산업자원부엔 당초 검토했던 개혁적 최고경영자(CEO) 대신 윤진식(尹鎭植)재경부 차관을, 건교부에도 최종찬(崔鍾璨)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앉혔다.

이처럼 안정성을 배려하기는 했지만 농림.노동.해양수산부에는 판이한 성향의 인물을 앉혀 일부에선 '불안정한 경제팀'이라는 지적도 있다.

외교안보팀은 북핵 해결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 DJ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 승계를 선언했던 盧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을 재임명했고, 국방부 또한 군내 미국통인 조영길(曺永吉)전 합참의장을 택했다.

윤영관(尹永寬)외교부 장관은 '연령 파괴'의 측면은 있지만 인수위 간사로 盧대통령의 미국관과 외교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화급한 북핵 문제의 해결사로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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