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갈포벽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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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칡덩굴의 껍질을 하얗게 벗겨 듬성하게 짠 갈포벽지는 근년에 개발되어 농촌에서 각광 받고 있는 산업의 하나이다. 그 벽지는 도시의 고급화한 주택을 치장하고 또 해외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지만, 그 올올에는 농촌 처녀들의 고운 손 때가 묻어 비로소 만들어진다.
충북 옥천은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갈포벽지의 고장. 소백산맥 일대에서 칡이 많이 나지만 전국을 통해 충북은 특히 으뜸이다. 전국 생산량 18만㎏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그 중에서도 옥천은 단연 높아서 연간 1만2천㎏ 청올치(칡덩굴의 속껍질)를 수확한다.
옛날 같으면 청올치로 할아버지들이 노끈을 꼬거나 고작해야 미투리를 짰는데 요즘에는 엉글게 베처럼 직조해 벽지로 쓰이기 때문에 옥천 처녀들은 일손이 여간 바쁘지 않은 것이다. 10여명 혹은 수십 명 씩 소규모의 공장 같은 여러 곳에 모여 직조를 한다. 그런가 하면 칡으로 청올치를 만들고 그것을 쪼개어서 꾸리로 만들어 주는 작업은 역시 개개 농가의 부녀자들이 틈틈이 해야하는 부업이 된다.
야산에서 칡을 걷어들이는 것은 남자들이 도와줘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을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기고 표피를 긁어내 하얗게 다듬는 일은 모두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일거리이다. 청올치 시세는 4백g(1백문)에 1백20윈.
청올치를 가늘게 쪼개어 꾸리로 만드는 품삯은 4백g에 1백20원. 하루에 1백원 벌이 밖에 안 된다고 비명이지만 1년 내내 일거리가 끊이지 않으므로 그것도 수월찮게 보탬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손끝이 잰 처녀들은 가정에서의 부업보다는 직조 공장에 몰려들기 마련이다. 보통은 하루에 8자5치짜리 4필 정도 밖에 못 짠다고 하지만, 옥천읍 삼회 갈포 공장에서 일하는 신경순 양의 경우에는 6필을 거뜬히 짜기 때문에 월 1만2천원의 벌이가 된다.
신양은 이 갈포벽지 공장이 옥천에 생기면서부터 7년 동안 익혀온 숙련공. 기술이 따로 필요한 일이 아니어서 손끝만 익히면 할만하다고 하면서 『이제 그만 결혼 해야죠』한다.
갈포벽지 공장의 직조공들은 한결 같이 미혼 여성이란 대답이다. 옥천에는 읍내와 그 인근에 이런 공장이 5개 소나 있다.
직조기계는 베틀과 유사하지만 그 보다 훨씬 단조하고 거친 일에 속한다. 바디는 철사로 살을 대었고 잉앗대 대신 손으로 줄을 당겨 씨줄을 메기는데 저절로 북이 날줄을 심으며 톡톡 튄다. 다만 청올치의 이음매가 자꾸 걸려 자주 멈추어 손을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선 좀 신경질적인 작업이랄까.
이래서 된 물건은 갈포벽지의 반제품. 여기에 종이를 발라 벽지로서 완성하는 일은 딴 공장에서의 공정에 속한다.
지금 갈포벽지 생산지는 청주·영동·옥천·원주·김천·상주·부산 등지. 원료가 산에서 나기 때문에 산을 끼고 생기기 마련이지만, 역시 지방 사람들의 근면한 마음가짐에도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옥천지방 농가에서 하는 수공업은 비단 갈포벽지만이 아니다. 청산면 일대에서는 가발 공장이 굉장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옥천에서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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