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약소국들 "이라크 덕분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요즘 아프리카 앙골라의 도스 산토스 대통령은 세계 어떤 정상보다도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지난 5일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 7일에는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고, 11일에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전화까지 받았다.

이어 주제 마누엘 두랑 바로주 포르투갈 총리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전화가 잇따랐고, 지난주에는 평소 같으면 얼굴 보기도 힘들던 미 국무부의 월터 캔스타이너 아프리카담당 차관보가 직접 찾아와 "나중에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하자"는 '황송스러운' 제안까지 했다.

이유는 현재 앙골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정은 같은 이사국들인 카메룬.칠레.기니 등도 마찬가지다.

유례없는 미국의 이같은 저자세는 이라크 전쟁 승인을 위한 유엔 안보리의 2차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탓이다.

결의안 통과를 위해서는 15개 이사국 중 1차적으로 9표가 필요하지만 현재 미국이 확보한 표는 4표(미.영.스페인.불가리아)에 불과하다.

물론 최종 통과를 위해서는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중국.러시아 모두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는 그 다음 문제다. 우선은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해 둬야 상임이사국들을 압박할 수 있고, 설사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해도 향후 단독 개전의 명분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리의 군소 비상임국가들로서는 가뭄에 물 만난 격이다. 미국은 찬성해 줄 경우 각종 경제.군사원조를 늘려줄 수 있다는 '당근'을 내비치고 있다. 이미 미국은 안보리 이사국도 아닌 터키에 군사기지 사용 대가로 무려 1백5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터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고민은 많다. 찬성해 주자니 이슬람교도 중심의 국내 여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종주국 격인 프랑스의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반대하자니 1991년 걸프전 때의 선례가 마음에 걸린다.

당시 미국은 끝까지 이라크 침공 결의안에 반대한 예멘에 대해 연간 7천만달러의 원조금을 그날로 중단하는 '채찍'을 휘둘렀다. 미국의 경제.군사원조는 이들로서는 없어서는 안될 큰 돈이다. 최근 들어 러시아조차 미국의 각종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터에 약소국들 입장에서 지조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미 국무부의 체스트 크로커 전 아프리카담당 차관보는 "지난 1차 결의안 표결 때 반대표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시리아까지 찬성해 만장일치로 통과됐듯 이번에도 깜짝 놀랄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몸값을 올리기 위해 반대하는 척할 뿐이지 결국 실제적 판단을 할 거란 얘기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