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공동체를 찾아서] 4. 카리스마타 수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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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거제도 남단의 홍포마을 앞 도로변에 몽돌로 지은 이층집 한 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여기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정원기(거제 광림교회 담임) 목사를 비롯한 목사와 전도사 등 10여명이 매 주말 모여 기도생활을 하는 카리스마타 수도회 본부다.

지난 22일 정오 무렵 이 수도회를 찾았을 때는 이 수도회의 영적 지도자인 박효섭(부산 괴정 감리교회) 목사가 막 가족과 함께 도착한 직후였다.

이들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교회를 이끌고 있는 수도회 회원들은 매주 이곳을 찾아 박목사의 지도로 묵상을 하며 영성을 새롭게 한다. 수도회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개신교에서 전통이 허약한 수도회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거제도에 거주하는 까닭에 수도회 운영에 가장 적극적인 정목사는 지난해 수도회를 만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목사는 거제도로 옮겨오기 전에 경기도 이천의 송라교회를 중심으로 농촌선교목회를 10여년간 했다. 정목사는 지난해 농목 활동을 접고 수도원 공동체에 새로 눈을 떴다.

"1980년대 중반 농민의 권익 향상을 위해 시작된 농목의 성격이 90년대 들어 크게 바뀌었습니다. 영성, 생명, 공동체운동으로 발전했지요. 농촌생활의 경험이 없는 입장에서 농민의 권익 향상에 한계를 느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정목사는 농목을 끝낸 뒤로는 기도란 도대체 뭔가, 초대 교회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놓고 거듭 고민했다. 이런 물음뿐 아니라 현재 개신교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은 수도공동체의 조직이라는 결론으로 나타났다.

'은수자(隱修者)들'이란 뜻을 가진 카리스마타 수도회는 스케테(skete)를 모델로 잡았다. 국내의 수도원 대부분은 수도자들이 한 곳에 모여 같은 규칙 아래 노동을 하면서 영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런 수도원이 정착하기 전에는 스케테라는 형태의 수도원이 존재했다.

수도자들이 각각 흩어져 살면서 정기적으로 지역을 대표할 만한 압바스(영적지도자) 밑에 함께 모여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생활을 꾸린다. 카리스마타 수도회는 대부분 결혼을 하는 개신교의 특성 때문에 스케테를 지향하고 있다.

정목사는 이 수도회를 바탕으로 개신교에도 독신 수사와 수녀가 많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요즘 젊은 신학생 중에서 결혼 안하고 수도생활에 전념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성세대로서 그들에게 기틀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올해 안에 교단에 수도회에 대한 청원을 올릴 계획입니다."

국내 개신교에 수도회의 전통을 새롭게 싹 틔우려는 이유는 뭘까. 정목사의 주장은 분명했다. "기도에 몰입하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만 신앙적 다양성과 깊이.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이 활성화되면 매년 양산되는 성직자들을 일부 소화하는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지금으로선 신학대학 졸업하면 목사 아니면 전도사의 길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교회가 다 받아줄 수 있는 현실도 아니고…."

서울대 농대와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정목사는 요즘 91년부터 목회활동 하면서 잃은 감성을 다시 찾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어 아주 행복하다고 말했다.

"청빈한 생활은 결코 고행이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살면 많이 갖지 않아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살 수 있어요. 그리고 함께 어울려 생활하다보면 서로에게 피보다 더 진한 정을 느끼게 됩니다."

거제=정명진 기자 m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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