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내티의 고민은 켄 그리피 주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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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시즌이 끝난 뒤 당시 현역 최고의 타자로 평가받았던 켄 그리피 주니어가 신시내티 레즈의 유니폼을 입기로 결심했을 때 그에 대한 가정은 두 가지였다.첫번째는 슈퍼스타인 그가 팀의 리더인 배리 라킨과 더불어 약화된 레즈의 전력을 극대화시킨다는 장미빛 기대였고 두 번째는 오히려 그가 팀에 화합을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리고 레즈에서 3년을 뛴 현재의 시점에서 본 그리피에 대한 평가는 첫번째 가정이 단순히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이고 우려했던 가정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팀의 전력 강화는 커녕 레즈의 전력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한 때 행크 아론이 보유한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인 755개를 깰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고 평가받기도 했던 그리피의 오랫 동안의 부진은 그래서 이제 레즈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올랐다.그의 지나친 부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기에 그 충격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고향팀에서 뛸 수 있는 조건이라면 적은 돈도 마다하지 않겠다던 그리피의 부진은 신시내티를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던 애초의 예상까지 빗나가게 한 채 정작 팀의 조화까지도 깨 버린지 오래다.

올시즌도 초반 무서운 기세로 지구 1위를 질주하던 레즈는 그리피가 부상에서 복귀하며 팀에 합류한 시점인 5월 후반부터 오히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1위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했고 더 이상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결국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구 3위로 시즌을 마감한 것이다.

그리피가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기록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올시즌 그리피는 부상으로 인해 단 70경기에만 출장했고 고작 8개의 홈런에 23타점만을 기록했을 뿐이다.특히 올시즌 그가 기록한 .264의 타율은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이었던 1995년 부상으로 인해 단 72경기만을 뛰었던 .258의 타율 이후 최저 타율이었을 정도로 그의 부진은 컸다.

더구나 그의 특기인 홈런포도 올시즌에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전성기 때 평균 3경기마다 하나꼴로 기록하던 홈런포도 올시즌엔 대략 9경기마다 1개꼴로 쳐냈을 뿐이었다.올시즌과 비슷한 경기를 뛰었던 1995시즌에도 그의 홈런수가 17개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홈런포가 얼마나 추춤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피는 또한 팀 화합에도 큰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 이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지표는 그가 뛴 경기에서 레즈가 기록한 성적이다. 그리피가 뛴 70경기에서 소속팀 레즈는 28승 42패, 승률 4할을 기록했는데 이는 올시즌 전체 승률인 .481에 비하면 많이 처지는 것이다.

특히 올시즌 그리피가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8월 23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그리피는 1홈런과 2타점을 기록하는 등 4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레즈는 4 대 6으로 패하고 말았다.

이는 그리피의 가세가 팀의 화합 차원에서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인데 이는 그만큼 레즈로 하여금 상당히 큰 고민거리를 만들게 한 셈이다.레즈는 조직력이 중요한 경기인 야구에서 한 명의 스타급 선수가 있는 것이 팀 전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셈이다.

그리피의 내셔널리그에서의 지난 3년 동안의 성적은 70홈런에 206타점이다. 이는 그가 한 시즌 평균 23홈런에 69타점을 기록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인데 시애틀 매리너스에서의 마지막 3시즌 동안 시즌 평균 53홈런에 143타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는 부상으로 인해 출장하지 못한 경기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리피의 전체적인 공격능력 저하는 홈런과 타점에서뿐만 아니라 타율과 도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결국 그리피는 팀 전력 강화에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팀을 화합시키는 데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2001시즌 시애틀 매리너스가 116승을 기록하며 역대 한 시즌 팀 최다승 기록과 동률을 이루게 된 원동력은 바로 랜디 존슨,켄 그리피 주니어,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슈퍼스타들이 빠져 나간 틈을 조직력으로 메운 결과였다.

이제 레즈가 2003시즌을 위해 준비할 대비책으로서 한 가지는 분명해진 셈이다.한 명의 스타급 선수가 팀 전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선수들 간의 화합이 팀 성적 향상에는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증명된 이상 레즈는 팀의 조직력부터 재건하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 과제로 남게 된 것이다.

배길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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