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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이 생활화되는 사회, 어쩌려고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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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다 하다 별 음모론이 다 나온다. 한 지인에게서 대통령의 복지공약 관련 사과와 스타들 열애설의 상관관계에 대한 음모론을 듣곤 실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핵심 복지공약인 기초연금 지급대상을 축소한 것에 대해 사과한 날, 세 건의 연예계 열애설이 터졌단다. 오종혁과 소연, 최자와 설리 그리고 엘. 이들 열애설이 대중의 관심 분산용으로 불거진 거란다.

 그야말로 ‘어르신들 기초연금’ 문제에 연령층이 한참 다른 아이돌 스타들의 열애가 무슨 관심 분산거리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대어급’이 없어서 한꺼번에 세 건, 양으로 밀고 나갔다나. 의외로 이 음모론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누군가 덧붙였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구속기소를 같은 날 한 것도 대통령 사과를 희석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고.

 이쯤 되면 ‘음모론의 생활화’라고 해도 될 지경이다. 물론 음모론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최근엔 거의 모든 정치사건마다 음모론이 따라붙는다. 남양유업 막말사건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보도는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 사건을 덮기 위해서라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사고도 국정원 사건을 덮기 위해 일으켰다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음모론까지 퍼졌었다.

 음모론은 세상이 거대한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다. 사회가 위기에 직면했거나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울 때, 소통이 막힌 사회에서 창궐하는 경향이 있단다. 한데 대통령 지지율은 어쨌든 60%를 넘고, 현재의 혼란과 위기감이 과거보다 더 크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왜 이 시점에 음모론일까. 이 주제로 몇몇 지인과 토론을 했다. 사회불안을 책동하려는 세력들의 장난이라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과거 유신시대 음모정치의 잔상에다 현재 청와대에서 대통령 다음 자리인 인물이 과거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했던, 그 유명한 ‘초원복집’사건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발동하는 ‘의심’도 거론됐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음모론으로 확산된다는 말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세상일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음모론이 위험해지는 건, 그런 현혹에 홀려 위기감을 부풀리고 혼란을 자초할 때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눈을 부릅뜨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믿음이 강하면 누가 우리 삶을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팔랑귀’를 닫고,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우리 할 일인 것 같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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