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11명 의사진행 방해 '필리버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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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은 26일 한나라당이 제출한 특검법안이 의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Filibuster.의사진행방해) 전술을 썼다. 그러나 박관용(朴寬用)국회의장이 저지하는 바람에 민주당의 지연전술은 물거품이 됐고, 특검법안은 결국 통과됐다.

필리버스터란 주로 국회 소수파가 숫자의 힘을 내세운 다수파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쓰는 것으로 미국.일본 등 각국 의회에서 곧잘 동원된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1964년 4월 21일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이 전술을 사용했다. 그는 이날 의사진행 발언권을 얻어 무려 5시간19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말을 했다. 이로써 金의원 구속동의안은 아예 상정되지 못했다.

민주당도 26일 본회의에서 소속의원들의 릴레이식 의사진행발언 수법을 썼다.

이에 따라 11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연단에 나와 고건(高建) 총리후보자 임명동의안에 앞서 특검법안을 먼저 처리하려는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사회를 본 박관용 국회의장에 대해 "아직도 한나라당 소속 같다"고 꼬집은 의원들도 있었다.

민주당은 이날 자정까지 의사진행발언을 계속할 방침이었다. 高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특검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본회의는 자동유회되고, 그러면 새 정부의 조각(組閣)은 다시 차질을 빚게 된다. 이 경우 비판여론은 한나라당에 쏠릴 것으로 민주당은 계산했다.

그러나 그런 전술은 통하지 않았다. 朴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朴의장은 민주당에서 11번째로 의사진행발언을 하기 위해 나온 설훈(薛勳)의원의 말이 끝나자 "똑같은 얘기를 더 듣는다는 것은 국회의 효율적인 의사진행 책임을 맡은 국회의장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라며 민주당에 더이상의 발언권을 주지 않고 본회의를 정회했다.

그리고 여야 총무에게 절충할 시간을 딱 30분 주고, 협상이 이뤄지지 않자 곧바로 본회의를 속개했다. 朴의장은 민주당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진행했고, 특검법안은 가결됐다. 이제 관심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과연 이 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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