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사령실 지시로 전원키 뽑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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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기관사와 운전사령 간의 교신 녹취록이 조작된 것을 밝혀낸 데 이어 1080호 기관사 최상열(39.구속)씨가 당초 진술을 번복함에 따라 지하철공사 경영진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 중이다.

대구지방경찰청은 26일 "'승객들을 대피시킨 뒤 습관적으로 전원키(마스컨 키)를 뽑아 탈출했다'고 진술해온 崔씨가 이날 '운전사령의 지시에 따라 키를 뽑아 대피했다'고 진술을 바꿨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崔씨가 사고 직후부터 경찰에 출두하기까지의 11시간 동안 지하철공사 직원 8명과 만나면서 공사 측이 조직적으로 사건 은폐를 기도했을 것으로 보고 공사 간부들의 개입 여부를 캐내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특히 교신 녹취록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난 吳모(58)감사부장이 사고 당시 중앙로역 폐쇄회로 TV 녹화 테이프 등 대구 지하철 모든 역의 폐쇄회로 TV 녹화 테이프 28개를 가장 먼저 입수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 테이프들의 변조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또 지하철공사 측이 제출한 마그네틱 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사고 당일인 지난 18일 오전 9시55분 이전 부분에서 '삐익 삐익'하는 잡음이 조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1079호 기관사 최정환(34)씨 등 검찰이 보강 수사를 지시한 3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27일 중 구속영장을 재신청키로 했다.

한편 1080호 전동차 내의 시신 수습 작업이 이날 마무리됨에 따라 이번 참사의 희생자 수가 2백명에 육박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북대 법의학팀은 이날 1080호 전동차 5호차에서 5구 등 모두 15~16구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5일까지 전동차에서 수습한 1백28구와 사고 현장에서 수습한 54구를 포함하면 사망자 수는 2백명 가까이 된다.

또 지난 25일 안심차량기지에 보관 중인 잔해에서 신체 일부와 유류품이 나온 데다 휴대전화 위치 확인 결과 84건이 중앙로역 일대였던 것으로 드러나는 등 인정 사망의 단서가 추가로 드러나고 있어 인명 피해 규모가 늘어날 전망이다.

실종자가족대책위는 이날 "쓰레기 더미에서 유골이 나오는 등 사고대책본부를 더 이상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며 "대통령 직속의 새로운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와 함께 대구지법에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중앙로역 사고현장과 유류품 등에 대한 훼손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특별취재팀
취재=허상천.송의호.정기환.정용백.홍권삼.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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